“조미료 적은 진짜 ‘집밥’ 같은 프로그램이 되고 싶어요.”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가 판치는 예능가에서 꿋꿋이 소박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KBS 2TV ‘불후의 명곡’의 연출을 맡은 이태헌 PD의 포부다. 오로지 가수와 무대만을 생각하고 우선시하는 방침 덕분에 시청자들도 울고 웃으며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
그렇다면 이러한 무대가 완성되는 ‘불후의 명곡’의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떠한지 이PD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 무대 당시 현장 분위기와 결과가 일치하는 편인가.
“방송상으로는 신동엽 씨와 가수들이 토크를 한 뒤에 결과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결과가 나온다. 노래만 가지고 평가하기 위해서다. 가수들도 이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경연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만 여러 번 나오면 더 이상 점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방송을 보면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주는 장면도 겨우 5초 정도만 나온다. ‘불후의 명곡’은 경연이 아니라 무대가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가수한테 무대를 다 주려고 한다. 일부러 리액션이나 예능적인 자막, 여러 가지 효과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가사만 들어간다.”
- 무대를 연출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오로지 가수다. 우리 프로그램에 한 번도 안 나온 가수는 있어도 한 번만 나온 가수는 없다. 가수 중에 섭외하기 어려운 가수들도 다음에 요청하면 힘들다고 하면서도 또 나온다. 무대가 가진 힘과 관객이 주는 에너지 덕분인 것 같다. 물론 시청자나 관객은 0순위고 그 다음이 가수, 그리고 마지막이 스태프다. 무대에 관한 모든 것은 가수의 뜻을 따르는 편이다. 전설한테도 편곡한 부분을 미리 알려드리지 않는다. 노래의 아이텐티티라 싫다고 할 수 있으니까. 얼마 전에 출연한 스모키의 크리스 노먼도 처음엔 반응이 그냥 그랬는데 3~4곡정도 지나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녹화 끝난 뒤에는 사진 찍고 싶다고 하고 노래 계속 듣게 파일도 보내달라고 했다. 외국 뮤지션들도 우리나라 뮤지션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다. 이게 바로 무대의 힘인 것 같다.”
- 무대 끝나자마자 결과 공개, 가수들에게 부담일 것 같다.
“어쨌든 경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수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일단 2~3번 나오면 점점 프로그램의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20대도 있고 60대도 있고 진짜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각기 다른 에너지로 즐기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일부러 가수들이 객석의 표정들을 볼 수 있도록 불을 항상 켜놓는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도 처음에는 관객들 얼굴이 다 보여서 무섭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재밌다고 하시더라. 무대가 가진 특별한 매력인 것 같다.”
- 현장MC인 신동엽이나 대기실MC 정재형, 문희준 등 MC들의 활약도 클 것 같다.
“신동엽씨는 워낙 베테랑이라 나도 많이 의지한다. 관객들을 모두 집중시키고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원래 판정대가 되게 딱딱할 수 있는데 덕분에 재밌고 따뜻한 자리가 됐다. 또 전설과 가수들의 거리가 있는데 그걸 좁혀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관객하고도 하나 될 수 있도록 한다. 장내MC인 MC딩동은 15~20분 정도 무대 사이가 빌 때 온도를 달궈놓는다. 대기실에서는 문희준 씨랑 정재형 씨가 예능적으로 많이 풀어주고 윤민수씨는 게스트들에게 음악적인 팁을 준다. PD로서 제일 고마운 건MC들이다. MC들끼리 워낙 호흡이 잘 맞아서 의지가 많이 되고 맡겨놓고 간다. 어느 한 부분이 낮다면 물이 채워지지 않는 것처 럼 모두 다 전력을 다해서 하고 있어서 이 시간대에 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유지하는 것 같다.”
- ‘불후의 명곡’을 연출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
“내용물이 잘 돋보일 수 있게 포장이 잘 됐을 때 너무 뿌듯하다. 일요일에 최종 합주 연습을하고 월요일에 녹화를 한다. 연습할 때는 가수들도 평상복 차림으로 허름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는데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가수들이랑 음악에 대해서나 방송에 대해서 격 없이 얘기하고. 녹화하는 날은 서로 예민해서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
- 연출자로서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특집이 있나.
“동요 특집을 해보고 싶다. 최근에 아이들이 동요를 잘 안 부르지 않냐. 동요를 국악이나 락이으로 편곡하거나 아이돌이 불러서 요즘 노래처럼 들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이왕이면 어린이날 특집 때 하고 싶다. 동요가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만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음악이니까.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 앞으로 ‘불후의 명곡’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나.
“집밥 같은 프로그램? 건강을 위해 맛이 없더라도 조미료 최소화하고 담백하고 건강하게 하려고 노력한 음식, 먹는 사람도 투정하고 먹지만 먹다보면 항상 그립고 생각나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 우리는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에 효과를 넣는다던지 진짜 조미료 안 친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명곡판정단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거의 현장 분위기 그대로 전하고, 담백하게 가수의 노래를 정직하게 들려드리려고 노력한다. 우리 프로그램에는 워낙 실력이 검증된 가수들이 많아서 보정도 안 한다. 음이탈도 잘 안 나는 편이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