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량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썩 깔끔한 편은 아니다. 모두가 생활고에 시달릴 것만 같고,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닐 것만 같다. 어느 정도는 맞을지 몰라도, 그것이 다는 아니다. ‘혼술남녀’를 통해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에서 배우로 변신한 키가 ‘미디어가 만든 노량진 환상’들을 철저히 깨부수며 공감을 샀다.
키는 지난 5일 첫 방송된 tvN ‘혼술남녀’에서 금수저 공시생으로 첫 등장했다. 노량진 입성을 고민하는 절친 공명(공명 분)에게 자신의 럭셔리한 공시생 라이프를 뽐내며 능청스러운 사투리 연기까지 차지게 소화해 냈다.
이날 방송에서 기범은 노량진을 오가는 여느 학생들과 달리 공부보다는 즐기는 삶에 치중하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부모님의 등쌀에 못이겨 노량진 탐방을 온 공명은 그런 기범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아는 공시생의 자세와 너무 다르다며 퉁박을 놓았지만, 기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네가 아는 것은 다 미디어가 만든 환상이다”라며 당당히 대꾸했다.
그가 말한 ‘미디어가 만든 환상’은 총 다섯 가지. 공시생 = 무릎 나온 츄리닝, 공시생 = 컵밥, 공시생 = 열악한 식사, 공시생 = 오락에 서툴다, 공시생 = 솔로라는 공식과도 같은 편견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깨부수는 기범의 라이프스타일에 공명은 매번 놀랐고, 그럴 때마다 기범은 태연한 얼굴을 한 채 나름의 논리로 응수했다.
허름한 옷을 입을 것이라는 편견에는 “여기 옷 잘 입는 애들 많다”며 보편적 분위기를 댔고, 컵밥처럼 간편식만 먹는다거나 열악하게 끼니를 때운다는 환상에는 저렴하지만 푸짐한 뷔페식을 보여 주며 공명의 식심(食心)을 사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노량진 오락실을 제패한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에 “난 원래 게임을 잘 했다. 노량진에 와서 잘하게 됐다는 소리 제일 듣기 싫다”며 입을 삐죽이기도. 또 공명이 노량진 카페에 즐비한 커플들을 보며 놀라자 “‘태양의 후예’ 못 봤나. 전쟁터에서도 사랑이 꽃피지 말입니다. 공시가 뭐라고 정분 나는 것을 막겠나”라고 말하는 기범은 과연 논리왕이었다.
고시생들에게 쏟아지는 연민의 시선을 깨며 얄밉지만 싫지는 않은 기범 캐릭터가 완성된 데는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각본 덕도 있겠지만, 첫 드라마 도전에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 준 키의 호연 역시 큰 몫을 했다. 최근 tvN ‘굿와이프’에서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깨고 배우로서 호평받은 애프터스쿨의 나나처럼, 샤이니의 키 역시 작품 속에서만은 배우라는 수식을 달아도 좋을 듯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혼술남녀’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