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작품이자 첫 사극인 영화 ‘고산자 :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는 볼거리가 무척 많은 영화다. 일일이 발품 팔아가며 영상 속에 담아낸 조선 팔도의 풍광은 CG설까지 일 정도로 아름다웠고, 김정호라는 위인의 삶을 너무 무겁게만 다루지 않은 연출은 접근성이 높았다.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신동미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이다보니 이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끼리 맞붙었을 때 발생하는 케미다. 고산자 김정호로 분한 차승원은 ‘케미 장인’ 답게 누구와도 찰떡 같은 호흡을 자랑하며 극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차승원과 네 명의 배우들이 ‘고산자’에서 보여 준 환상적 케미들을 짚어봤다.
#1. 차승원X유준상
역사 속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의 관계는 식민사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부분이다. 쇄국정책을 내세운 흥선대원군이 지도 제작을 이적 행위로 간주하고 김정호를 잡아 가뒀다는 것인데, 당대 정황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고산자’에서는 이 같은 기록을 일부 활용하되 김정호(차승원 분)가 세도가 김좌근(남경읍 분)과 흥선대원군(유준상 분)의 권력 다툼에 희생된 것으로 묘사한다. 극 중 흥선대원군은 매우 강직한 원칙주의자이지만 민초를 위해 지도를 만든다는 김정호의 뜻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캐릭터다. 유준상은 그간 영화나 드라마 등지에서 다뤄졌던 흥선대원군과 일견 다른 모습들을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로 작품의 긴장감을 담당하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까딱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김정호와 필요한 상황에서는 굳은 고집도 꺾을 줄 아는 리더 흥선대원군의 영화 속 만남은 신념과 신념의 맞붙음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차승원과 유준상의 눈빛이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카리스마가 폭발적 시너지 효과를 냈다.
#2. 차승원X김인권
김정호와 그의 지도 목판 제작을 전담하는 조각꾼 바우(김인권 분)의 케미는 ‘고산자’의 활력소다. 마치 꺼꾸리와 장다리를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이 한 장면에 잡힐 때마다 그 능청스러운 연기에 폭소가 터져 나온다.
바우는 극 중에서 김정호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의 딸 순실(남지현 분)을 향한 불순한(?) 의도로 김정호를 장인(丈人)처럼 떠받들지만, 점차 장인(匠人)으로서의 김정호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진다. 그 역시도 목판을 다루는 장인이었기 때문일 터다.
두 사람은 시종일관 티격태격대는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를 몸 담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라는 태도를 보이는 대목은 감동적이다. 영화 속 김정호의 가장 편안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딸 순실이나 여주댁과 함께 있을 적이 아닌 바우와 함께할 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도 차승원과 김인권은 촬영 전 목판 조각 수업을 받으며 케미를 완성했다고.
#3. 차승원X남지현
‘고산자’의 순실은 집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은 아버지 김정호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저잣거리에서 마주쳐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마냥 미워하지만은 못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지도꾼으로만 기억되던 김정호의 삶에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족애가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덕분에 ‘고산자’에서 지도와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김정호의 이면이 절절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김정호에게 조선 팔도에서 돌 하나씩을 주워 달라고 하며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으려 하는 애틋함은 물론, 짧아서 입지 못하는 옷도 아버지가 사다준 것이라 소중히 여기는 짠함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딸에게 항상 부채감을 느껴 절절 매는 김정호와 그런 아버지에게 늘 무뚝뚝하게 대하다가도 그를 속 깊이 챙기는 순실의 부녀 케미는 관객들에게 독특한 감동을 줄 수 있을 듯하다.
#4. 차승원X신동미
여주댁(신동미 분)은 바우와 더불어 극 중 김정호가 가장 의지하는 캐릭터다. 집을 비운 김정호 대신 홀로 남은 순실의 엄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데다가, 아내 없는 김정호의 연인이기도 하다.
순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김정호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그보다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 크다. 오랜만에 만난 김정호와 여주댁이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를 때는 두 사람의 애정신이 적다는 점이 아쉬워질 정도다. 차승원과 신동미 모두 도회적 이미지를 가진 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사극을 통해 얼굴에 땟국을 묻혀도 잘 어울렸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고산자 : 대동여지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