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회 사이에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복잡한 코스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야말로 번개처럼 휘몰아치는 급박한 전개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 두 사람이 겨우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구르미 그린 달빛’에는 아직 흔한 키스신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극 중 박보검과 김유정의 감정에 설득력이 실리는 것은 오로지 두 배우의 눈빛 연기 덕이었다.
지난 6일 방송된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홍라온(김유정 분)과 이영(박보검 분)이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가며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라온과 영이 처한 드라마 속 상황들은 두 사람을 극과 극으로 이끌며 끝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했다.
앞서 영은 라온을 향해 커져가는 마음을 질투로 표현해 왔다. 그러나 어의의 진단처럼 ‘연심을 품어선 안 되는 사람을 마음에 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가리기 위해 라온을 차갑게 대했지만, 그럴수록 라온과의 추억이 영을 괴롭힐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청나라 사신의 계략에 라온이 위기에 빠지고, 영은 그를 구해낸 뒤 “내 곁에 있어라”라는 고백으로 진심을 전했다.
18부작 드라마에서 1/3 시점의 전개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빨랐다. 극에서 가장 큰 비밀인 라온의 진짜 성별 역시 주요 인물들은 다 알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이영까지도 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들도 포착된다.
보는 이들에게 이 같은 전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탄탄한 각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가와 감독이 차려 놓은 밥상을 걷어차지 않을 배우의 연기력이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데 이를 박보검과 김유정이 해냈다. 남녀 주인공이 연인으로 발전했음을 공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 키스신 없이도, 눈빛 만으로 이미 만리장성을 쌓았다.
먼저 박보검은 라온을 향해 움직이는 영의 마음을 솔직하면서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표현하며 애정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 왔다. 반면 김유정이 연기한 라온은 5화부터야 본격적으로 영에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미성년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눈이 빛을 발했다. 시작은 달랐지만, 두 사람 사이 불쑥 자란 절절한 감정들이 시선으로 오갔다.
두 배우의 설득력 있는 연기 덕에 으레 드라마 속에서 러브라인을 두고 벌어지는 시청자들과의 밀고 당기기도 거부감이 없다. 적수가 없을 만큼 치솟는 시청률과 화제성은 덤이라 느껴질 정도다.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애틋함, 영과 라온이 박보검과 김유정이라 다행이라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구르미 그린 달빛’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