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단계만 해도 강우석 감독은 차승원을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큰 키에 서구적인 외모가 조선시대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가 보여준 김정호의 초상화는 차승원의 얼굴과 똑 닮아 있었고, 두 얼굴의 묘한 동질감이 감독의 마음을 끌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속 김정호는 그야말로 지도에 미친 광인(狂人)이다. 그리고 차승원은 이처럼 고집스럽게 지도만을 바라보는 김정호라는 인물을 입체적이고도 집요하게 그려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혔던 김정호를 되살린 그는 김정호를 "정상은 아니었던 분"이라고 표현했다.
"(김정호가 만든)목판본을 보고 유추해 보건대 정상적이진 않으셨던 것 같아요. 정상적인 개인사가 있었던 분은 아니었죠. 기록에 친구들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이미 스무 살 전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았고 몇 권의 책을 펴냈고, 그 이전에 지도 몇 개를 만들었다고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외곬인 겁니다. 목판본을 직접은 못 봤지만 그것과 같은 크기로 제작한 목판 연습을 한 게 있어요. 그걸 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해요. 위대한 분이 맞지만 이면으로는 일상적인 생활이 잘 안 됐겠다,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승원은 한동안 김정호에게 푹 빠져있었던듯 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한 인물을 쫓아가면서 연기를 한 건 처음"이라며 "차곡차곡 쌓아 공들여 인물을 잘 보듬은 느낌"이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하는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부담감 역시 만만치 않은 무게도 다가왔다. 특히 실존인물을 그리는 것은 역사와 영화적 허구 사이의 긴장감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가 많고, (어떤 부분에 대해)역사 왜곡, 사실과 다르다,고 하는데 저 역시도 그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자라나는 청소년, 학생들이 그걸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은요. 누군가 스태프 한 분이 '고산자'를 보고서 '어린 학생들은 아마 영화를 보면 김정호가 저랬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라고 했는데 실존 인물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제 말이 이 말이었어요."
불과 지난해 MBC 드라마 '화정'으로 광해군을 재해석한 차승원이다. '고산자'처럼 사극이었던 '화정'에 대해 꺼내니 그는 "이래서 곤란한다. 당분간 사극은 안 하려고 한다. SF를 하고 싶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보다는 땅에 안착한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것.
"어린 시절 봤던 '조선왕조 500년'을 봐도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거기서 의로운 사람은 지금까지도 의롭게 느껴져요. 잔상이 남아서죠. '그 역을 하셨던 분'하면서 배우도 그 배역으로 보게 되죠."
차승원이 이토록 쉽게 사극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이번 영화와 김정호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호처럼 미쳐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잠시 여기(고산자)에 미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답했다.
"워커홀릭이에요, 나도. 굉장히 계획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미쳐있을 수 있나, 이렇게 미친 기분이 뭔가 싶었어요. 나도 찾고 있어요. 확 미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게 작품이건 뭐가 됐건간에 정말로, 완전히 100%를 온전히 쏟아부어서 털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영화도 제가 그렇게 가는 과정 중 하나죠. 내가 잠시 여기에 미쳤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 뒤에 어떤 작품을 만나 '그 때 미친 건 미친 게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의 작품을 또 만날 수도 있는 거지만....그런 작품을 만나길 학수고대하죠."
인터뷰②에서 계속../eujenej@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