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예능프로그램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특집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한도전’이라 가능했던 영화 도전이기도 했다. 60여일간의 기적 같은 행보는 대형 반전과 뭉클한 감동,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10년간 출연했던 정형돈과의 아름다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지난 10일 액션 블록버스터 특집인 ‘무한상사 2016-위기의 회사원’ 마지막 이야기를 공개했다. 지난 해 10주년 특집으로 기획했다가 대본 작업을 위한 시간이 마땅치 않아 올해로 미뤄진 이 특집은 어쩌다 보니 대형 특집이 됐다. 미니시리즈 2편에 해당되는 제작비가 투입됐고 영화 감독 장항준과 드라마 작가 김은희 부부가 제작진으로 가세했다. 두 사람은 각각 ‘라이터를 켜라’와 ‘시그널’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합류로 대중의 기대치는 높아졌다. 그동안 보던 상황극이 아닌 진짜 영화를 만들겠다는 ‘무한도전’ 제작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무한상사’는 멤버들이 직장인이라는 설정 하에 펼치는 상황극이었다. 이번에도 멤버들이 직장인이고 ‘무한도전’ 내 캐릭터가 고스란히 이어졌다. 잔소리 많은 유부장(유재석 분), 바보라 놀림받던 정과장(정준하 분) 등 ‘무한상사’ 상황극 캐릭터가 영화에도 펼쳐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탄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더해졌다는 것. 스릴러 장르가 입혀지고 김은희 작가의 풍성한 이야기가 갖춰지니 안방극장에서 공짜로 보는 영화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장항준 감독의 긴박감 넘치는 연출도 한 몫을 했다. 시종일관 심각하면서도 긴장감이 형성됐는데 한두 장면씩 재치가 담겨 있어 잠시 숨을 돌리는 틈이 있었다.
반전만 있는 게 아니었다. 권전무(지드래곤 분)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유부장(유재석 분)을 비롯해 ‘무한상사’ 직원들을 하나둘 죽였다는 충격적인 진실 이면에는 회사원이기 때문에 윗선에서 지시하는 부당한 비자금 관리를 떠안았던 직원들의 고충과 애환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소모품이고, 지금 당장은 죗값을 받는 권전무가 돈과 권력으로 다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는 유부장의 예측과 씁쓸한 발언은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마지막에 권전무의 비자금을 남몰래 기부하는 유부장의 통쾌한 일갈은 권선징악이라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장치이기도 했다. ‘시그널’이라는 판타지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는 필력을 보였던 김은희 작가는 흥미가 가득한 스릴러 장르에 직장인의 애환을 녹여 마지막에 뭉클한 감동과 공감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시작까지 ‘무한도전’의 ‘무모한 도전 정신’이 느껴지는 결과물이기도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예능프로그램으로서 처음으로 시도한 영화 제작, 60여일간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만든 결과물은 완성도 높은 진짜 영화였다. 사실 본격적인 촬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빛내준 지드래곤, 김혜수, 이제훈, 쿠니무라 준, 김희원 등의 배우들의 화려한 면모에 집중됐던 것이 사실. 막상 뚜껑이 열린 ‘무한상사’는 소문난 자치에 먹을 것이 없을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내실이 꽉 찬 좋은 작품이었다. 동시에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이 예능프로그램 캐릭터를 이어가며 영화를 만들었고 대중의 큰 호응을 야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찬란하고 빛나는 도전이었다. 이 프로그램이니까 가능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시청자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최종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떠난 정형돈이 깜짝 출연해 “회복해서 꼭 꼭 다시 만나자”는 대사를 남긴 것 역시 깊은 여운을 남겼다. 11년간 이 프로그램과 인연이 있었던 정형돈과의 아름다운 마지막 인사는 크나큰 반전과 감동만큼이나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 jmpyo@osen.co.kr
[사진]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