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DC의 몸부림, 왜 슈퍼히어로에 집착할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09.14 13: 2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현재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SF판타지 아니면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가 주류다. 그건 그만큼 관객들이 이런 장르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왜 관객들은 메이저스튜디오가 슈퍼히어로에 집착하게끔 이런 인물과 장르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낼까?
DC엔터테인먼트 회장 겸 CCO(최고 창조 책임자)인 제프 존스는 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과거에 DC 영화의 투지와 어두운 면이 차별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었다”며 희망과 낙관을 언급했다. 더불어 “잭 스나이더 감독이 ‘저스티스 리그’에서 메인 플롯과 캐릭터에 집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앞선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과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기획단계에서부터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뚜껑을 열고나자 크나큰 실망 속에 혹평을 받은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즉 ‘저스티스 리그’부터 DC코믹스의 확장 유니버스의 분위기를 마블의 그것처럼 확 바꾸겠다는 의미다.

현 시점에서 코믹스에선 형이었던 DC가 영화에선 동생인 마블에 한참 뒤진 상황이다. 마블은 ‘엑스맨’ 시리즈부터 ‘어벤져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앤트맨’ ‘데드풀’ 등 내놓는 슈퍼히어로물들이 호평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엑스맨’ 시리즈 중 ‘울버린’이나 사실상 완결편인 ‘엑스맨 아포칼립스’만 혹평을 받았을 뿐이다.
특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소재가 고갈될 대로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희망의 끈을 잘 버무린 수작으로 평가받을 정도다. 마블의 각 시리즈들은 서로서로 연결되면서 소소한 재미를 주기로 유명한데 ‘어벤져스’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예고한다거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센티넬을 개발하는 박사 이름을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의 철저 Stark의 배열을 바꿔 트라스크(Trask)로 만드는 재치만점의 센스를 보여줄 정도다.
‘어벤져스’는 그냥 재미만 주는 게 아니다. 마냥 가볍기만 했던 ‘아이언맨’이나 다분히 미국 우월주의의 선전물처럼 보였던 ‘캡틴 아메리카’의 결점을 보완한 ‘어벤져스’를 통해 각 히어로들의 트라우마와 고뇌를 그려낼 정도다. 헐크 캐릭터는 무차별 총기난사 등의 현대인에게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분노조절장애증후군을 은근히 빗댄다.
물론 DC에도 훌륭한 철학과 진지한 메시지 그리고 탄탄한 플롯 속의 개연성 강한 캐릭터는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왜 재벌가 상속자인 브루스 웨인이 박쥐가면을 쓰고 어두운 밤에 숨어서 활동하는 ‘흑기사’가 돼야했는지, 과연 그의 트라우마와 고뇌는 무엇인지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촘촘한 시퀀스로 플롯을 완성했다.
‘왓치맨’ 역시 마찬가지다. 80억 명을 살리기 위해 수천만 명을 죽여야 하는 슈퍼히어로의 선택을 통해 세상의 위정자들을 교묘하게 비웃으며 진실의 중요성과 진정한 단죄가 어떤 것인지 과감하게 관객들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그리고 ‘슈퍼맨’을 리부트한 ‘맨 오브 스틸’을 통해 전지전능한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과연 진정한 인류의 수호신인지, 아니면 언제라도 파괴자 혹은 지배자가 될지 자아비판을 한 게 DC의 철학의 끝이었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판단력이 흐려졌으며 배트맨은 더 심해져 고집불통인 소통불가의 중늙은이로 전락했다. 두 사람이 싸워야 하는 이유가 고작 ‘맨 오브 스틸’이 던진 질문을 승계하는 데서 끝났으며 화해하는 계기는 어이없게도 어머니의 이름이 같다는 것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지구 최고의 악당들을 이용해 엄청난 능력을 지닌 주술사의 마법에 대항한다는 내용인데 그 통제가 불가능한 극악무도한 악당들이 뜬금없이 우정을 나누고 가족애를 내세우며 순수한 사랑에 빠진다는 허무맹랑한 설정을 세워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C가 계속 수정 보완해서 유니버스를 확장시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는 당연히 흥행 때문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예상의 3분의 2밖에 못 벌었지만 흑자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메이저스튜디오가 슈퍼히어로물에 유독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가성비다. 멜로는 이미 비주류가 된 지 오래고, 호러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하지만 승률과 가성비가 떨어진다. 우주괴물 SF는 이제 재료가 바닥났고, 로봇영화는 슈퍼히어로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여기엔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교묘하게 결부돼있다. 구 소련의 해체로 냉전시대가 무너진 뒤 지구촌은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언제라도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듯 아슬아슬한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유럽에선 테러가 빈번하고, 미국에선 무차별 총기사고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미국은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북한의 김정은은 무슨 생각인지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릴 만큼 철부지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 모든 혼란과 혼돈은 서민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다. 유럽연합이 무너지고 중동의 난민은 유럽 각국의 안정과 질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결국 사람들은 정신적 현실도피로써 영화 속 판타지의 세계 혹은 그 어떤 무력에도 지구와 지구인을 굳건하게 지켜내는 슈퍼히어로의 활약에 빠져듦으로써 무기력하거나 이기적인 지도자 아니면 불안한 심리상태를 잠시 잊거나 혹은 ‘혹시나’의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D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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