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 불리고, 소모품으로 치부되면 어떠랴. 하루하루 버티고 살아가는 게 결국 승리자인 것을. 방송인 정준하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액션 블록버스터 특집에서 또 다시 바보의 반란을 보여줬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은 아니지만, 누구나 찬란한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정과장 역의 정준하가 시청자들에게 안긴 감동이 꽤나 크다.
‘무한도전’의 액션 블록버스터 특집인 ‘무한상사 2016-위기의 회사원’이 지난 10일 막을 내렸다.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라는 화려한 배우와 제작진 진용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영화가 남긴 묵직한 이야기의 여운은 시간이 지나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과대 포장이 아니었다. ‘시그널’을 통해 판타지 장르에 묵직한 사회적인 문제를 녹아냈던 김은희 작가는 이번에도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위안을 안기는 마무리를 했다.
자신의 잇속을 위해 ‘무한상사’ 직원들을 하나둘 죽였던 권전무(지드래곤 분)의 진실을 파헤친 정과장(정준하 분)과 유부장(유재석 분)의 승리는 감동이었다. 물론 유부장의 말처럼 권전무가 죗값을 완벽히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해도 그렇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묻으려는 하사원(하하 분)은 정과장에게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면서, 만년 과장으로 언제 잘릴지 몰라 위에 눈치나 보면서,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 거냐. 만날 일에 치이고 돈에 치이고 아등바등 살아봤자 달라질 게 없다”라고 몰아세웠다. 하사원을 탓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질 만큼 우린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다.
또 다시 바보 같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정과장의 안타까운 표정, 그리고 하사원이 권전무의 꼬임에 넘어간 것을 안 후 유부장이 남긴 “바보처럼 사는 게 훨씬 낫다. 쪽팔리게 사는 것보단...”이라는 조언은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전개와 김혜수·이제훈·쿠니무라 준 등 이름값 높은 특별 출연 배우들의 위용보다도 더 묵직한 기획 의도가 있었던 것.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라는 유부장의 말처럼 하루하루 힘겹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직장인과 소시민들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위로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들을 바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바보 같이 묵묵히 살아가는 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무한상사 2016’의 행복한 결말이 보여준 이야기다. 잠시 흔들렸지만 바보의 길을 택한 하사원, 조직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부조리한 선택을 했지만 결국 큰 정의를 택한 유부장, 순박해서 사내 정치 싸움에 능하지 못해서 늘 기죽어 있는 바보지만 우리와 같은 바보라서 응원을 하게 되는 정과장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바보 연기 장인 정준하의 힘이 나온다. 정준하는 2013년 방송됐던 ‘무한상사’ 뮤지컬 특집에 이어 또 다시 바보의 반란을 보여줬다. 당시 정리 해고 직장인의 애환을 다루며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이야기로 꿈과 희망을 안겼던 정준하. 비록 모든 게 꿈이었다는 설정으로 또 다시 바보 같은 일상을 살았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정감이 가는 인물이 ‘무한상사’ 속 정과장이다.
정준하는 다수의 작품을 통해 정극 연기를 쭉 이어오고 있는 연기자답게 뭉클한 감동을 안기는데 재주를 발휘한다. ‘무한도전’에서 가지고 있는 예능 캐릭터 역시 어수룩해서 친근하다. 뮤지컬 특집에 이어 이번 ‘무한상사 2016’에서도 긴박감 넘치는 휘몰아치는 전개 속에 그가 보여준 짠한 감정 연기가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데 일조했다.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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