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여자는 라디오 PD고, 남자는 사운드 엔지니어다. 두 사람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담다가 가슴 속에 서로를 담게 된다. 그 시작은 “라면 먹고 갈래요?”였다.
그렇게 일과 사랑을 다 잡은 듯했던 두 사람의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여자에겐 썩 능력이 있는 남자가 접근한다. 여자의 마음이 흔들리더니 남자친구가 지질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엔 다툼이 일기 시작하고 여자는 이별을 선언한다. 남자는 울먹이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애원하지만 이미 모든 건 물 건너간 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다.
9월 21일(한국 시각) 세기의 커플이라며 ‘브란젤리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이혼소송 소식이 전해졌다. 졸리는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를 사유로 법원에 이혼 소장을 제출한 가운데 여섯 자녀의 양육권을 주장했다. 아이 중 셋은 입양아다.
미국 언론은 이와 관련, 졸리가 피트와 마리옹 코티아르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이를 확인한 뒤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올 초 영화 ‘얼라이드’를 촬영하면서 불륜설의 구설수에 올랐다. 코티아르는 2007년부터 프랑스의 배우 겸 감독 기욤 카네와 동거하며 2011년 아들 마르셀을 출산했지만 혼인신고는 아직 안 했다.
졸리의 아버지인 원로배우 존 보이트는 “아이들이 큰 상처를 받을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피트와 졸리는 2005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부부사이로 출연하며 연인이 됐다. 이미 제니퍼 애니스톤과 결혼한 상태였던 피트는 이혼하고 졸리와 동거를 시작했다.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입양하기도 하는 등 실제 부부생활을 하는 가운데 언제 결혼할지에 대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던 이들은 2014년 8월 드디어 웨딩마치를 울렸다. 하지만 불화설과 이혼설에 계속 시달려왔고 그럴 때마다 금슬을 과시했지만 결국 ‘쇼윈도부부’임이 드러난 셈이다. 졸리는 피트의 육아방식까지 딴죽을 걸고 있는 중이다.
국내 누리꾼은 가장 상처를 입을 아이들의 할아버지인 보이트를 비난하는 모습이다. 자신도 이혼하며 졸리를 버린 비정한 아버지였는데 이제 와서 손자 손녀를 제일 걱정하는 할아버지 코스프레를 하는 게 영 눈에 거슬린다는 반응이다.
사람이 동물의 영역에서 상위층에 존재한다는 증거는 문명 문화 과학 기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이다. 동물들에겐 후희라는 게 없다. 교미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또 다른 짝을 찾아 헤매는 종도 상당수다.
그런데 이 사랑을 유도하고 완성하는 근본 호르몬인 도파민 등의 유효기간이 영원하지 않고 길어야 2년 남짓이라는 게 문제다.
동물들은 권태라는 걸 못 느낀다. 배만 부르고 주변에 천적만 없다면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뒹굴거나 잠만 잘 수 있는 게 동물이다.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만 봐도 그렇다. 나무늘보는 어떤가?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아무리 무식하고 의식이 부족하며 지적인 의욕이 왕성하지 않더라도 심심한 것은 누구나 참기 힘들다. 오지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생계도 있지만 권태가 싫어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을 때 권태라는 괴물을 등한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싫증은 언제든지 찾아온다. 서양엔 ‘악마는 직접 사람을 찾아갈 수 없을 정도로 바쁠 때 술을 보낸다’는 격언이 있다. ‘술’ 자리에 ‘권태’를 대입할 만하다.
이 ‘세기의 커플’의 파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와 남자가 12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동거와 결혼생활을 이어갔고 아이를 입양하는 선행까지 모범을 보이며 모두의 부러움을 샀지만 결국 ‘사랑은 유한하다’는 ‘호르몬의 법칙’만 입증했다. 우리나라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율이 날로 하락하는 게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역설이다. 어쩌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울먹이던 상우의 순수함은 고고학 발굴현장의 낡은 화석이 된 지 이미 오래일지도 모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