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적으로 ‘뒤통수를 맞는’ 것이 가끔은 물리적으로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것보다 더 아플 때도 있을 터다. ‘질투의 화신’ 조정석은 고경표의 뒤통수에 진짜로 주먹질을 할 지언정 죽마고우를 배신할 위인은 못 됐다. 대신에 끊임 없는 자아비판으로 스스로를 상처 입힌 그다.
지난 21일 방송된 SBS ‘질투의 화신’에서는 이화신(조정석 분)이 표나리(공효진 분)를 짝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혼란을 겪었다. 화신은 질투와 자존심 때문에 나리를 절친 고정원(고경표 분)에게 소개해 준 상태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신해 술을 마시고 숙직실에 뻗은 나리가 깰까 조심히 그의 등 뒤에서 지키고 있던 화신은 홍혜원(서지혜 분)에게 이 광경을 들켰다. 혜원은 화신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어하던 나리에 대한 짝사랑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팩트로 얻어맞은 화신의 괴로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화신은 정원에게 “너한테 몇 대 맞고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다”며 권투 글러브를 건넨다. 이상하게도 화신의 주먹은 정원의 뒤통수로 향하고, 묘하게 기분이 상한 정원도 더 이상 화신을 봐주지 않았다. “뒤통수는 치지 마라”라고 인상을 쓰는 정원의 표정이 복선처럼 다가왔다.
제목부터가 ‘질투의 화신’인 터라 이 같은 화신의 질투 퍼레이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화신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방법으로 자아비판을 한다는 것은 예측 밖이었다. 특히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 표나리를 기다리면서도 그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는 화신의 이중적 감정은 조정석의 신들린 연기력과 함께 폭발적 시너지를 냈다.
“정원이 믿자. 나보다 더 외로운 놈이고, 나보다 자상하고, 나보다 여자한테 더 잘 해줄 놈이고, 나보다 돈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사내답고, 키도 크고, 나보다 좋은 신발 신겨 주고, 나보다 더 좋은 곳 데려갈 놈이고”
정원의 스캔들에 시무룩해진 나리를 위로하는 화신의 이 말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와 화살촉처럼 그를 찔렀다. 정원에 대한 모든 수식은 자신과의 비교였다. 화신에 따르면 그 스스로는 정원보다 자상하지도 않고, 여자한테 잘 해주지도 못하고, 건강하지도 않고, 사내답거나 키가 크지도 않다. 스스로 가하는 팩트 폭력에 보는 이들의 마음이 오히려 아팠다.
화신 캐릭터의 매력은 이처럼 염치를 안다는 점이다. 가끔은 자존감 부족으로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스스로를 깎아 내릴 때도 있지만 기본은 나리에 대한 애정과 배려다. 그래도 한 번쯤은 이 짠하고 하찮은 마초가 염치 따윈 잊고 시원하게 고정원의 뒤통수를 때릴 날이 오길 바라 봐도 될까. /bestsurplus@osen.co.kr
[사진] ‘질투의 화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