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은 막강했다. 젊은 패기만 갖고 맞서기엔 수목극 판은 전쟁과도 같은 곳이었다. MBC 새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가 첫 판에서 판정패를 당한 가운데 시청률 반등을 노리고 있다.
22일 시청률 전문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첫 방송된 '쇼핑왕 루이'는 5.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함께 출발한 KBS 2TV '공항가는 길'은 7.4%의 시청률로 '쇼핑왕 루이'에 판정승을 거두었다. SBS '질투의 화신'은 시청률 12.3%을 찍으며 수목극 1위를 따냈다.
화제성에서는 '쇼핑왕 루이' 역시 두 작품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서인국이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물이고 이종석-한효주 주연의 'W'의 후속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뚜껑 열린 '쇼핑왕 루이'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저 서인국의 원맨쇼였다. 그가 맡은 남자 주인공 루이는 프랑스 저택에 살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쇼핑 뿐이었다. 1천만 원짜리 한정판 재킷은 무조건 1등으로 사야했고 값비싼 보석들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재벌 3세.
그런 그에게도 사연은 있었다. 유일한 혈육이자 황금그룹의 회장인 할머니 최일순(김영옥 분)의 과잉보호 때문에 음식도 가려먹어야 했고 운전은 꿈에도 못 꾸는 일이었다. 비가 오면 창문을 열지도 못했고 친구들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자나깨나 손주 걱정 뿐인 할머니를 위해 루이는 참고 또 참았다.
서인국은 강아지 같은 루이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밤새 쇼핑하느라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는데도 "늦게 가면 찜해 둔 선그라스가 품절될 것"이라는 집사(엄효섭 분)의 말에 아이처럼 신 나서 외출 준비를 하는 루이를 보며 시청자들은 '엄마 미소'를 지었다.
반찬 투정에 약 먹기 싫어 도망가는 루이는 영락없이 철없지만 귀여운 '펫'이었다. 가진 건 돈 밖에 없지만 그동안 드라마에서 그려진 안하무인 재벌3세가 아니라 고복실(남지현 분)이 나오는 오지 다큐 프로그램을 보며 "서울에 아직도 저런 곳이 있냐"며 냉장고를 보내주고 싶다고 말하는 착한 재벌남이었다.
1회에서는 루이가 쇼핑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중심으로 그의 럭셔리 라이프가 주된 스토리로 풀어졌다. 여기에 여주인공인 고복실이 할머니를 여의고 상경했다가 사기를 당해 산에서 캔 산삼을 다짜고짜 기차역에서 차중원(윤상현 분)에게 파는 이야기가 더해졌을 뿐.
그런데 1회가 끝나기 직전 난데없이 프랑스에 살던 쇼퍼홀릭 루이와 강원도 산골처녀 고복실이 거리에서 마주했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루이가 단숨에 서울로 날아온 건데 어쩐 일인지 기억을 잃고 거리에서 노숙하다가 발견돼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불친절한 전개에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나마 방송 말미에 공개된 예고편에서 루이가 기억을 잃었고 고복실은 잃어버린 동생과 비슷한 재킷을 입은 그를 보고 착각한 걸로 전개돼 2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맥락 없는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맥락 있게 풀어가야 할 숙제가 주어졌다.
여기에 하나 더. 방송 직후 '쇼핑왕 루이' 시청자 게시판에는 스토리 외에 연출 방식을 꼬집는 목소리로 도배됐다. 다소 뿌연 화면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 실제로 '쇼핑왕 루이'는 타 방송사 작품에 비해 유난히 뿌연 색감이 도드라진다.
서인국을 내세워 홍보했던 만큼 '쇼핑왕 루이' 첫 회는 오롯이 그의 매력만 돋보였다. 다만 여주인공과 '케미', 쇼핑왕에서 꽃거지가 된 반전의 상황, 기억을 잃은 그가 평소 삶과 180도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에피소드가 앞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요소다.
이를 서인국에게만 떠넘기면 안 될 터. 조정석-공효진의 '질투의 화신', 이상윤-김하늘의 '공항가는 길'에 역전을 이루기 위해서 '쇼핑왕 루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하나씩 풀어간다면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쇼핑왕 루이'가 서인국의 연기 인생에서 오점으로 남지 않길 팬들은 바라고 있다. /comet568@osen.co.kr
[사진] '쇼핑왕 루이'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