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심을 자극하는 코드 가운데 하나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매달리는 설정이다. 여기에 본래는 여자를 막 대하던 남자가 사랑을 깨닫고 후회한다는 양념까지 가미되면 판타지의 끝판왕이 이룩됐다고 봐도 좋겠다. 유치하다고 욕해도 별 수 없다. ‘후회 남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히는’ 공식이었다.
SBS ‘질투의 화신’ 속 이화신(조정석 분)이야말로 이 ‘후회 남주’형 로맨스에 꼭 들어맞는다. 안하무인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마초인데다 입만 열면 남자 여자 타령은 필수요 말 끝마다는 “계집애”를 달고 사는 화신 캐릭터, 요즘 세상에 대본만 떼어 놓고 봤다가는 큰 논란을 면치 못했을 터다. 자신을 3년 동안 짝사랑한 표나리(공효진 분)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화신은 조정석을 만나 설득력을 얻었고, 나리 역의 공효진을 만나 개연성을 획득했다.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이 드라마는 논란밭을 헤매다 애저녁에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신의 이 같은 치명적 결점들은 극에서 후회의 전초전으로 기능한다. 더 이상 동정할 여지도 없을 만큼 바닥을 친 남자 주인공이 돌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구걸할 때 감정의 동요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꽃보다 남자’가 무려 20년을 사랑받았던 것은 츠카사가 그 긴긴 연재 기간 사랑의 후회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게다가 화신에게는 여느 후회 남주들과 다른 매력이 있다. 하찮음과 몸에 밴 배려다. 여자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어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다. 험한 입버릇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따뜻함도 있다. 후회에 사로잡힌 남자가 여자에게 질척거린다는 뻔한 설정이지만, 이처럼 화신 캐릭터가 다양한 빛을 뿜어내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은 외려 볼 때마다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에 나리와 함께 걷게 될 꽃길을 알고 있기에, 남은 15회 동안 화신이 좀 더 가혹한 후회길에서 구르길 기대해 봐도 될까. 그에 앞서 방사선 치료부터 열심히 좀 나가길 바라 본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질투의 화신’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