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NL코리아' 시즌2부터 고정 크루로 합류한 권혁수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 것은 바로 시즌7의 '더빙극장'이었다. 당시 '호박고구마'를 '고구마호박'이라고 잘못 발언했다가 며느리 박해미에게 구박당하다가 폭발하는 나문희의 모습을 품은 '거침없이 하이킥' 장면을 더빙한 영상은 웹과 SNS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권혁수는 지상파에 역진출, MBC '라디오스타'에서 "호박고구마" 개인기를 외치며 크나큰 이슈를 불러모았다.
이후 권혁수에게도 '더빙극장' 팀에게도, 나문희의 '호박고구마'는 흡사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는 뭘 해도 '이를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던 중 시즌8에 새롭게 접어들면서 '들장미 소녀 캔디'로 애니메이션에 첫발을 내디딘 '더빙극장' 팀은 '올림포스 가디언'이라는 막강한 콘텐츠를 발굴해내는 데 성공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이라고 예의 바르게 고개 숙이는 오르페우스를 향해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 책임져!"라고 꾸짖는 디오니소스. 이에 자신의 악기인 리라를 들고 아주 신명나는 전자 기타음(?)을 쏟아내면서 모든 이를 자동으로 들썩이게 만든 오르페우스의 모습 등은 '병맛 코드'를 지향하는 'SNL코리아' 맞춤형 콘텐츠가 확실했다. 권혁수 역시 "레퍼선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실소가 터져나왔던 작품"이라고 '올림포스 가디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앞서 '나문희' '호박고구마'로 점철됐던 권혁수와 '더빙극장'의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는 순식간에 '디오니소스', '오르페우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등으로 대체됐고, 그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SNS에서는 일반인들이 이를 재차 패러디한 영상들도 속속 등장했다.
'더빙극장'이 촬영중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OSEN을 만난 권혁수는 "'하이킥'의 '호박고구마'에 도전했을 때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번 '올림포스 가디언' 영상을 봤을 때는,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림포스 가디언'은 '병맛' 그 자체다. 원래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힘도 있고, 그걸 새롭게 가공해낸 'SNL코리아' 팀의 능력도 분명히 있다. 100% 카피가 아닌, 재가공의 느낌이 묻어나는 색깔 있는 카피다. 오히려 내가 노력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없다"고 겸손한 모습을 내비쳤다.
현장에서 만난 '더빙극장' 연출자 손용락 PD는 "'더빙극장'의 또 다른 멤버 이세영이 숨소리, 눈의 깜빡임 등 디테일한 모든 것들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라면, (권)혁수 형은 현장에서 듣고 대본 이상의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천재성 같은 게 있다"고 자신이 느낀 두 명의 크루의 강점을 구분했다.
한때 '코믹한 이미지가 굳어질 것 같다'는 권혁수의 과거 고민은 여전할지 궁금했다. 특히 이처럼 '병맛색' 짙은 '올림포스 가디언'표 '더빙극장'이라면 우려되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질문에 권혁수는 손을 저으며 "그런 고민을 했던 때가 있는데, 이제는 전혀 걱정 안한다. 이건 분명 지금만 할 수 있는 거고, 내가 잘하는 일이다. 연기를 공부할 생각이 없다면 그런 걱정이 계속 됐겠지만, 연기를 꾸준히 공부할 계획이고, 앞으로도 계속 보여드릴 것들이 많아서 특별히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변화된 심경을 전했다.
'콩트'와 '정극연기'에 대해 특별한 선을 긋지 않는다는 설명도 추가로 덧붙였다. 권혁수는 "둘 다 똑같다. 글을 쓰는 단계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썼느냐의 차이일 뿐, 연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이 필요하고, 이 캐릭터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를 고민하는 건 어차피 동일하다"고 자신의 연기관을 드러냈다. 또 새삼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니, 흥이 다 깨졌다. / gato@osen.co.kr
[사진]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