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리다’는 표현보다는 ‘아직 젊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가끔은 노처녀라 불리는 여자가 애인도 친구도 없이 홀로 맞는 생일. 그리고 화면 위를 흐르는 셀린 디옹의 ‘all by my self’. ‘브리짓 존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명장면이다.
극 중 설정만 평범한 미녀 배우들이 판치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계에서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 분)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전 세계가 술주정뱅이에 골초,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실수투성이지만 진짜 사랑을 기다리는 소녀스러움이 글자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훔쳐 봤다.
누가 봐도 잘난 남자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 갈등은 뭇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켰다. 또 브리짓의 현실적 통통함과 언뜻 촌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는 새빨간 볼은 사랑 앞에 늘 솔직했던 그의 모습과 어우러져 내면의 사랑스러움을 이끌어냈다. 그 브리짓이 이제 불혹을 훌쩍 넘겼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게 됐고 눈가에 주름도 늘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러블리’했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브리짓 존스’ 시리즈 2편인 ‘열정과 애정’ 이후 12년 만에 팬들을 찾았다. 일주일 차이를 두고 연애정보회사 CEO 잭 퀀트(패트릭 뎀시), 인생의 남자 마크 다아시(콜린 퍼스 분)와 각각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게 된 브리짓이 돌연 임신을 하게 되며 뱃 속 아이의 아빠를 찾는 좌충우돌 소동기가 담겼다.
십 여 년이 흐르는 동안 브리짓은 어엿한 보도국 PD가 됐고, 다이어트에도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가 30대의 생일에도 그러했듯, 마흔 세 번째 생일 역시 달갑지만은 않다. 초가 수북히 쌓인 케익이 꼴보기 싫고,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한다는 현실은 여전히 비참하다. 아직도 외로움에 의연하지 못한 브리짓은 친구와 뮤직 페스티벌에서 야릇한 일탈을 꾀한다. 그는 우연히 만난 잭과 ‘오늘 처음 본 남자와 거사 치르기’라는 특명을 성공시킨다.
앞서 “앞으로는 연애를 끊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겠다”고 했던 다짐 때문인지, 브리짓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던 잭을 두고 일상에 복귀한다. 이 와중에 10년을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던 마크와 연달아 재회하니 옛 감정이 되살아났다. 그 사이에 아내가 생긴 마크 역시 브리짓에 대한 애정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두 사람은 열정적인 밤을 보냈지만, 언제나 비껴가기만 했던 타이밍 때문에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던 브리짓은 마크를 떠난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브리짓에게 덜컥 아기가 생겨 버린 것이다. 잭과 마크에게 그들이 아기 아빠 후보임을 알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샤론 맥과이어 감독 특유의 코믹한 터치로 그려지며 폭소를 자아낸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두 남자가 브리짓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 역시 웃음 포인트다.
지난 시리즈에서 연적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 분)에 비해 이성적이고 냉철한 모습을 보여 줬던 마크는 자신보다 더 이성적인 수학자 잭과 브리짓의 사랑을 놓고 다투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잭의 사랑은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의지와 알고리즘 신봉의 결과물로 낮잡힌다. 사랑의 라이벌 간의 균형이 이미 마크에게로 기울어져 있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이혼 소송 중이라지만 원리원칙주의자인 마크가 이전의 관계를 마무리짓지 않고 브리짓에 대한 사랑을 갑작스레 드러내는 대목은 의아하다. 그간 어긋났던 타이밍만으로도 브리짓과 마크 사이의 감정적 시련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캐릭터를 훼손하면서까지 갈등을 유발하려 한 점이 아쉽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길 없는 것처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와 그 속의 인물들도 약간은 변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브리짓의 등장과 그가 원하던 행복을 손에 넣은 모습을 보며 반가움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