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감독 장률이 마치 '꿈' 같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장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춘몽'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으로 선정, 6일 개막작 시사회를 통해 그 첫 선을 보였다.
'춘몽'은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한예리 분)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을 배경으로 세 명의 남자와 그들만의 여신인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영화 '경주', '필름시대사랑' 등으로 유명한 장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흑백으로 사람들과 풍경을 그려낸다. 흑백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치. 게다가 '춘몽'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꿈'이라는 소재가 사용됐기 때문에 '춘몽'은 마치 하나의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극 중 예리 역을 맡은 한예리의 춤이 영화의 '꿈같은'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예리는 몸이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릴 적 연변에서 온 처녀. 몸이 아픈 아버지를 보살피랴, 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운영하랴 바람 잘 날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 뒤에 항상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들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예리는 세 명의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신뒤 춤을 추는데, 몽환적인 표정으로 살랑살랑 춤을 추는 한예리의 모습은 지금 이것이 현재인지 혹은 꿈 속인지를 헷갈리게 만들며 영화의 오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형성해낸다.
뿐만 아니라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춤을 출 때만큼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만 춤이 끝나고 나면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치 꿈과 그 꿈에서 깨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는 영화의 제목인 '춘몽'과도 어울린다. '춘몽'은 '일장춘몽'에서 나온 말로 '일장춘몽'은 한바탕의 봄 꿈.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할 때 사용되는 말로 예리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한물간 건달 익준(양익준 분),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박정범 분), 그리고 금수저이지만 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어리바리 종빈(윤종빈 분) 등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듯 싶다.
4명의 주인공 중, 한예리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배우 3명이 영화 감독이라는 사실 역시 '춘몽'의 재미 포인트. 이미 다수의 작품으로 익숙한 양익준 감독을 제쳐놓고서라도 영화 '산다'를 연출했던 박정범 감독,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연기는 영화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전망이다. / trio88@osen.co.kr
[사진] '춘몽' 포스터,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