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은판 위의 여인', 삶과 죽음..그 모호한 경계[21th BIFF]
OSEN 김경주 기자
발행 2016.10.08 13: 45

프랑스 제작진, 프랑스 배우들과의 첫 협업이었지만 늘상 '삶과 죽음'을 다루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특유의 주제는 여전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은판 위의 여인'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8일 오전, 언론에 공개됐다. 
'은판 위의 여인'은 19세기 촬영방식인 다게로타입으로 인물 초상을 찍는 괴팍한 스테판과 그의 모델이자 딸인 마리, 그리고 스테판의 조수로 고용돼 이후 마리와 사랑에 빠지는 장, 세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다게로타입이란 은판으로 사람의 초상을 찍는 기법으로 모델이 빛이 노출되는 시간 동안 털끝만치도 움직여선 안된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 스테판은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은판 사진을 찍지만 힘든 촬영 과정에 지친 아내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고, 다음 모델이 된 딸 마리 역시 쉽지 않은 촬영에 점차 지쳐가고 만다.
이 작품을 통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삶이 끝나는 것이 죽음인데, 무엇이 모호하다는 걸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죽는다는 것이 곧 삶이 끝난다는 것이라는 보편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생을 다해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는 스테판과 아내, 장과 마리의 관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테판은 아내의 은판 초상을 바라보며 줄곧 '불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불멸, 죽지 않음을 뜻하는 말. 결국 영원한 삶이며 죽음이 삶의 끝이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스테판은 종종 자신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와 심지어는 아내의 모습을 집 안에서 발견하곤 한다. 아내는 마치 살아있는 듯 남편을 바라보고 남편을 부른다. '귀신'이라고 하기엔 생생하다. 아내는 그렇게 자신이 죽은 집 안에서 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장과 마리의 관계를 살펴보자.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엔딩 장면이다. 극 중 장 역할을 맡은 배우 타하르 라힘의 연기가 압권이며 그의 연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차 안에서 울먹이던 그가 마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래, 좋은 여행이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삶과 죽음, 그 모호한 경계를 말하고자 했던 감독을 잘 대변하는 장면이다.
호러 영화의 대가인만큼 무시무시한 호러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주제를 능숙하게 다뤄왔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매력을 또 느끼고 싶다면 챙겨봄 직 하다. / trio88@osen.co.kr
[사진] '은판 위의 여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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