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유해진 '럭키', 한국 코미디의 마지막 자존심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09 08: 1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 ‘럭키’(이계벽 감독, 쇼박스 배급)는 개봉을 앞두고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등의 뉘앙스를 짙게 풍기는 마케팅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주로 깡패 등의 악역을 많이 맡아왔으나 정작 액션보단 코미디 실력으로 위상을 높여온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짐작하듯 이 영화는 코미디를 흥행의 첨병으로, 시나리오의 힘을 묵직한 단전으로 포진한 채 기억과 희망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엮어서 노래한다.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낙비 내리는 한밤. 승용차 안에선 함중아와양키스가 취입했고 허윤정이 리메이크한 ‘그 사나이'를 향리가 또 다시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록버전이 강하게 울려 퍼진다. 차 안의 주인공은 성공률 100%의 ‘눈빛만 봐도 죽는다’는 킬러 형욱(유해진)이다. 신속, 정확하게 타깃을 처리한 그가 운전석에 앉자 라디오에선 ‘57분 교통정보’가 흘러나온다.
32살의 무명배우 재성(이준)은 허름한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에서 산다. 답답한 현실에 가로막힌 그는 추억을 유발하는 사진들을 모두 태우고는 목을 맸다가 때마침 찾아온 건물주 아줌마의 “좀 씻고 살라”는 핀잔에 ‘기왕 죽는 거 깨끗하게 죽자’며 동네 목욕탕에 간다.

마침 형욱도 이 목욕탕에 들어왔다 바닥의 비누를 밟고 자빠진다. 탈의실에서 럭셔리한 형욱의 패션을 본 재성은 죽기 전에 호강 한 번 누려보자는 생각에 자신과 형욱의 라커 키를 바꾼다. 다행(?)스럽게도 형욱은 모든 기억을 잃고 자신이 재성이라 착각한 채 그의 집에서 살게 된다.
형욱은 자신을 구해준 119 구급대원 리나(조윤희)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 취업하는데 의외로 칼솜씨가 신의 경지여서 다양한 모양의 김밥과 단무지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가운데 기억을 찾기 위해 재성의 달력 메모를 통해 움직인다. 그 결과 자신(재성)은 스타를 꿈꾸는 무명배우고 또 아버지는 그런 못난 아들을 말없이 응원하는 시골의 가난한 이발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의 엑스트라 생활이 시작되고 한 드라마에 출연하는데 워낙 무술실력이 탁월한 덕에 액션 연기에서 빛을 발하면서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고 그럼으로써 점점 배역이 커진다.
형욱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게 된 재성은 형욱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비밀 창고에 각종 무기와 의상 그리고 신분증들이 즐비한가 하면 모니터로 웬 미모의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 그 주인공은 한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고자 하던 전 직원 은주(임지연)로 기업 총수가 형욱에게 살해를 의뢰해놓은 상태였다. 어느덧 은주를 사랑하게 된 재성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형욱으로 행세한다.
리나와 사랑에 빠지고 배우 일도 술술 잘 풀리던 형욱은 리나의 가족들과 함께 놀러갔다 돌아오는 어느 밤, 차 안에서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밖에는 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차안에선 ‘그 사나이’에 이어 ‘57분 교통뉴스’가 나오고 있었던 것.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가볍게 즐기고자 한다면 나쁘지 않은 팝콘무비다. 네 주인공부터 특별출연의 이동휘와 전혜빈까지 각종 코믹 요소로 무장한 채 관객들을 웃길 태세다. 유해진을 캐스팅한 감독의 의도, 혹은 그가 주인공이 됨으로써 완성된 시나리오상의 소소한 재미가 곳곳에 녹아있다.
스타배우 역을 맡은 이동휘의 ‘갑질’과 전혜빈의 의도된 과장연기는 촌철살인이다. 연예스타를 연예스타가 비꼬는 셈이다.
시나리오만 놓고 보면 완성도도 나쁘지 않다. 특히 후반부의 반전이 주는 의미가 꽤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혹은 둘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함수관계 아니면 동질감이다.
영화의 소재는 기억과 희망이다.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이던 형욱은 기억을 잃은 뒤 사람도 살리고 자신도 살고자 한다. 킬러 시절에 그의 삶에 재미나 여유나 인간미 따윈 없었을 게 뻔하다. 키스 한 번 못해본 인생이다.
이제 그는 기억나지 않는 예전의 추억 따윈 중요하지 않다. 리나와 사랑에 빠졌고, 목표였던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추억을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으면서 살면 된다.
재성 역시 마찬가지. 희망이 없어 절망을 잊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던 그가 부자가 됐고, 사랑하는 여인도 생겼다.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그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은 은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죽음마저도 불사하거나, 잘되면 은주와 함께 잘 살면 된다. 이 두 커플이 이렇게 기억과 희망의 소나타를 사랑이란 멜로디로 완성해가는 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재성과 은주의 ‘밀당’ 때 재성의 과잉친절로 은주의 캐리어 손잡이가 부러지는 에피소드 등의 불필요한 시퀀스가 몇 군데 들어있어 잠깐씩 지루할 수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에 리나가 투입된 설정은 억지스럽다. 뭣보다 칼잡이 킬러 유해진은 ‘공공의 적’ 시리즈와 ‘부당거래’를 합친 듯하다는 표현을 굳이 내세우지 않더라도 매우 익숙하다. 15세 이상 관람 가. 13일 개봉./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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