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인 이경규가 데뷔 35년 만에 역사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연출과 출연을 함께 하는 것. 그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이다. 1981년 데뷔 후 예능의 살아 있는 역사인 그는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PD 이경규가 간다’에서 연출자로 변신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20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크게 두가지의 관전 지점이 있다. 이경규가 연출자로서 동분서주하며 제작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좌충우돌을 보는 재미다. 어떻게 보면 이경규의 PD 도전기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출연자로서 웃음과 감동을 만들기 위해 연출에 힘을 써서 만든 결과물을 지켜보는 흥미가 있다.
반려견 뿌꾸의 분양된 가족을 만나는 첫 번째 특집은 무려 1박2일에 걸쳐 촬영이 진행됐고, 5시간이라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카메라가 멈추지 않았다. 장기간의 녹화에도 쉬지 않고 제작과 출연을 넘나들며 이경규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단 10회로 기획돼 있다. 시즌 1을 마무리하고 나면 시즌 1에서 쌓아놓은 제작 틀을 바탕으로 하나의 구성을 택해 시즌 2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래서 역사 강의, 악극단 도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라면 소개, 양심 냉장고 찾기 등 다양한 특집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촬영, 이경규는 끊임 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진행자이자 촬영이 흐트러지지 않게 구성을 살펴야 하는 연출자였다.
촬영 시간이 굉장히 길고 제작과 출연 동시에 하니 힘들 것 같다.
많이 힘들다. 오늘도 이 촬영 끝나고 또 촬영이 있다.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양심 냉장고’ 찍으러 간다. 1996년도에 방송됐던 건데 20년 만에 하는 거다. 이미 몇 번 촬영했다.
양심 냉장고를 다시 하다니 놀랍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나?
방송으로 봐달라. 깜짝 놀랄 거다. 시대의 변화가 딱 나온다. 놀라운 변화가 있을 거다.
원래도 열심히 했지만 최근 더 열심히 촬영에 임하는 것 같다.
그동안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다.(웃음) 내 마지막 카드를 던지는 거다.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마지막 카드다.(웃음) 예전에 열심히 안 했다기보다는 예전에는 조금 남겨놓고 했다. 요즘은 그런 시대가 아닌 듯 하다. 이젠 뽕을 뽑을 때까지 하는 거다.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이 자꾸 김태호, 나영석 PD와 비교를 하더라. 그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건가?
그들과 나는 경쟁할 수 없다.(웃음) 우린 그들과 제작비나 여건이 다르다. 다만 아이템으로는 경쟁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아이템을 하게 되면 그게 서로에게 경쟁력이다. 그들과 경쟁하면 당연히 우린 한계가 있다. 노하우가 부족하지 않나.
‘PD 이경규가 간다’가 화제성이 높은데 좋은 성과 아닌가.
요즘은 시청률보다 화제성이 있느냐, 시청자들이 정말 시청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능프로그램이 정말 많지 않나. 거기다 온라인용 프로그램도 있다. 심지어 개인 방송국도 있다. 우린 더 노력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예능 제작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없다.(웃음) 내가 예능 제작을 정말 하면 돈 문제와 관련이 생긴다. 초심을 잃을 수 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지만 제작하는 건 아니다. MBC에브리원과 제작사 코엔이 하는 거다. 내가 직접 제작을 하면 나에게 관대해지고 스스로 용서를 많이 할 것 같다. 내가 이 프로그램과 금전적으로 관련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연출하면서 열심히 하느라고 제작진을 괴롭혀도 다들 이해를 해주는 거다. 잘 만들기 위해 괴롭히는 거니까. 그런데 만약에 돈이 결부돼 있으면 내가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돈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렇게 보인다는 건 아니지 않나.
방송을 30년 넘게 했는데 늘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 비결이 있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인터뷰 내내 막힘 없이 이야기하던 그는 잠시 고민을 했다.)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 사실 난 잃어버릴 게 없다. 건강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프로그램은 망하더라도 어떤 스타일이든 시도하면 된다. 개의치 않는다. 10개 도전해서 3개만 성공하면 된다.
10개 중 3개 성공이면, 3할 타자인데 그것도 어려운 일 아닌가.
요즘 제작진은 나보다 어리지 않나. 내가 그 사람들에게 내 진심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잘 하려고 제작진을 들볶아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제작진이 안다면 나를 도와줄 거다. 나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나이가 아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나도 이제 한계가 왔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내가 노력하고 변화하려고 해도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안 된다. 그래서 내 진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30년 넘게 같은 일을 하면 지겹지 않나.
정말 지겹다.(웃음) 그런데 난 이것보다 재밌는 게 없는 것 같다. 가끔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방송을 꼭 본다. 그 나라 사람들이 TV에 나오면 신기하다. 그때 ‘아 내가 하고 있는 게 재밌고 신나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자극받는다. 외국 방송국도 많이 간다.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 부여가 된다. 나는 내 모습을 모르니깐, 거기 가서 촬영하는 것을 보면 재밌다. 그렇다고 내가 건방지게 행동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자긍심이 생긴다. 지금 이 촬영장을 봐라. 저 사람들이 일하는 게 재밌어 보이지 않나?
‘PD 이경규가 간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일단 팀워크가 잘 맞아야 한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아 이런 프로그램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정말 요즘엔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 다채널 시대에서 대박치기는 정말 힘들고, 그냥 우리를 기억하게 만들고 싶다. 점점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겠다. 즐겁고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Oh!쎈 현장③에서 계속) / jmpyo@osen.co.kr
[사진] 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