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습격②에서 이어집니다.) 개그맨 지상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력이다. 예를 들어 유행어인 '안습', 즉 '안구에 습기 찬다'는 말을 만든 이가 바로 지상렬이다.
"어디다 대고 지문을 묻혀?", "왜 남의 인생에 깜빡이 켜고 들어와?" 등 언어유희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 이 때문에 '지상렬 어록'이라는 연관 검색어도 생겼는데, 이 같은 지상렬의 입담은 그가 진행을 맡고 있는 라디오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 어록이 정말 많은데, 다 즉흥적으로 하는건지 궁금했다.
"맞다. 다 즉흥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저는 라디오 생방 30분 전에는 온다. 더 일찍 안 오는 이유는 너무 대본 숙지를 많이 하면 그 맛이 안 살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아슬아슬하다'고도 하시더라. 또 어떤 분이 'TV에서는 거침없이 말을 하던데 라디오 생방 때는 떠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떠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던 것을 혼자서 하다 보니 오랜망에 아가미에 경련이 온 거다. 아나운서도 아니고, 가수처럼 폐활량이 좋은 것도 아니다 보니 호흡이 딸릴 수밖에 없다. 둘이서 하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혼자는 그게 안 되다 보니 '아가미 근육이 없어서 혀로 아령 좀 들겠다'는 얘기를 했다. 준비를 해서 하는 멘트가 아니다. 이걸 해야지 하고 하면 재미가 없다. 물론 자기 스타일이다. 준비를 해와서 A, B, C 맞춰서 하는 사람이 있고, 단순하게 생각만 해서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엔 단어를 일부러 만들거나 하는 건 아니다."
- 그런 단어들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제가 어려서부터 길게 얘기를 하는 것보다 짧게 애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줄여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외국 나가서도 통역이 필요없는 것이, 짧게 말해도 다 통하기 마련이다. 라디오도 그렇다. 쉽게 하자는 생각에 뇌를 비운다. 고민 사연도 A4 한 장씩 읽는 건 안한다. 장문의 문자를 보면 대부분 힘들다는 내용이다. 그런 내용은 환기를 시켜준다. 그 분들에게 이렇게 해라 식의 가르침이나 명언을 드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렬이도 사는데요 뭐", "저도 힘든 거 있는데, 안 좋은 생각하면 뭐하냐. 스트레스만 늘고 자기 손해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해준다.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 목표다."
- 1996년 SBS 5기 개그맨으로 데뷔해 벌써 활동한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선배 개그맨으로서 눈여겨 보는 후배들이 있다면?
"숨은 진주들이 정말 많다. 기회가 없을 뿐이지 다 잘한다. 추대엽, 한민관, 강성범 등 이런 친구들은 영원한 코미디언이다. 가진 총알이 정말 많다."
- 요즘은 아이돌 멤버들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많이 드러내는데 같이 호흡을 맞춰보면 어떠한가?
"저는 아이돌 친구들에게는 늘 머리를 조아린다. 정말 잘하고 훌륭하다. 우리 어렸을 때 장국영, 왕조현, 장만옥, 여명 이런 홍콩 스타들 때문에 말을 배우고 그들을 흉내내곤 했는데, 지금은 한류로 인해서 우리 말을 배우는 외국 팬들이 정말 많더라. 얼마 전에 아이돌 멤버들과 촬영을 했는데, 해외 팬들이 다 와 있더라. 우리 말도 저보다 더 잘한다. 얼마나 뿌듯한 일이냐. 정말 애국자들이다. 또 아이돌 볼 때마다 저만큼 하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싶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내공이 쌓여 있다 보니 척하면 척이다. 대단하다. 과정 없이 결과는 없는 거다."
- 최근 JTBC '아는 형님'에서도 그랬지만, 여자 MC들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그런 것을 보면 동료로서 많이 안타까울 것 같다.
"현재 '웃찾사'나 '개콘'을 빼고 우리 나이 또래 중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을 말해보라고 하면 쉽지 않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휘재, 정준하 정도? 우리가 밑거름이 되어줘야 하는데, 개그맨 선배로서 이런 고민 안 하는 선배 없을거다. 그런데 환경 자체가 어쩔 수가 없더라. 그렇지만 이것이 누구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건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물론 걱정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는 있고, 또 못해줄 때는 미안하지만 결국엔 자기 몫인 거다."
- 그런 의미에서 MBN '사이다' 같이 개그 선후배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는 건 좋은 것 같다.
"방송국마다 하나씩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선배도 선배지만 후배들이 무대에 자주 올라가야 자신감이 생긴다. 연습과 실전은 생각하는 거와 많이 다르다. 그리고 잘 견뎌내고 있으면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parkjy@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