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연기를 한다. 그렇지만 연기가 배우가 해야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 배우는 기자회견, 인터뷰, 무대인사 등으로 계속해서 대본 속 말이 아닌 살아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잘하는 배우를 사랑한다. 김태리와 한예리는 확실히 말을 잘한다.
◆ 한예리 : 고르고 고른 진실한 말들
영화제에서 인터뷰와 기자회견은 반복된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뻔한 질문과 답이 오가며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같은 답을 하는 배우의 탓도 게으른 기자의 탓도 아니다.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한 슬픈 풍경이다.
반복 속에서도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은 다르다. 작년보다 축소된 부산영화제의 분위기에 관해 묻는 질문에 한예리는 딱 좋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표현할 줄 알았던 예상에서 벗어났다. 한예리는 안성기의 말을 빌려오면서 앞으로 계속될 부산영화제의 미래를 긍정하고 우울한 현재를 위로했을 뿐 아니라 21년이라는 과거를 존중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했을 수도 있으나 준비의 결과물은 깊고 진실했다. 어째서 한예리가 장률 감독, 김종관 감독과 연이어 작품을 하게 됐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 김태리: 노출에 답하다
영화 속 노출은 배우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찍는 것도 찍고 난 뒤에 어떻게 보일지도 그에 따르는 반응들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 많다. 아무리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고 해도 그런 어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김태리는 훌륭하게 해냈다. 그렇기에 부일 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올 연말 김태리를 기다리는 트로피는 분명 더 많을 것이다.
한동안 김태리를 따라다닌 노출에 대한 질문이 어김없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나왔다. ‘아가씨’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에 김태리는 차분하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김태리는 "노출에 대한 부담감이 당연히 있다. 그런 부담감은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이니까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그 속에 캐릭터에 매료가 됐고 노출이 이유가 있음을 저 스스로 느꼈다"고 밝혔다. 그 누구도 아닌 배우로서 자신이 한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속 시원한 답변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김태리를 발굴한 뒤에 아티스트로 성장할 것이라고 점쳤다. 박찬욱 감독의 말에 점점 더 신뢰가 간다./pps2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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