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환호를 받는 드라마가 있을까.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이 결방 우려를 딛고 정상 방송을 하며 안방극장을 떠들썩하게 했다. 프로 야구 중계 방송으로 결방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본 방송 사수 움직임을 이끈 드라마가 기적적으로 정상 방송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이 드라마의 큰 인기를 알 수 있다.
‘달의 연인’은 지난 10일 당초 예상과 달리 정상적으로 전파를 탔다. 사실상 결방 가능성이 높았다. SBS는 10일 오후 6시20분부터 KIA타이거즈와 LG트윈스의 와일드카드 경기 중계 방송을 했고, 오후 9시26분까지 야구 중계가 끝나지 않으면 드라마를 결방하겠다고 알렸다. 야구 경기가 3시간 안에 끝나는 일은 흔치 않다. 더욱이 포스트 진출권이 달린 와일드카드전이라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고 경기 시간이 길게 소요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야구 종료 후에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8뉴스’가 예정돼 있었다. 통상적으로 3시간 30분, 길게는 4시간도 넘기는 야구 중계 이후 ‘달의 연인’까지 방송시간이 허락될지가 미지수였다. 시청자들은 자정을 넘겨서라도 방송을 해달라고 했다.
시청률은 두자릿수에 못 미치지만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 드라마답게 결방 가능성 소식이 전해진 직후 SBS는 온갖 협박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정규 방송이 우선이 아니냐는 글들이 쏟아졌고, 결국 늦은 공지로 분노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오후 9시 26분이라는 마지노선까지 발표했다. 지난 해 MBC가 드라마 결방 공지를 늦게 했다가 온갖 항의를 받은 뼈아픈 경험을 한 후 결방 공지에 있어서 한층 빠른 발걸음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
프로야구 정규 경기는 개막전이 아닌 이상 지상파 3사의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서 중계 방송되기에 정규 방송 결방은 없다. 문제는 주말에 열리는 개막전과 정규 경기 상위팀이 벌이는 포스트 시즌은 그 중대한 관심이 쏠리기에 지상파 중계가 진행된다. 국내 최고 인기의 프로 스포츠인 야구, 스포츠 이벤트 등 중요 경기를 전국민이 볼 수 있는 지상파로 중계할 의무가 있는 방송사로서는 의무적인 편성이다. 그때마다 정규 방송이 지연 혹은 결방되고 정규 방송 시청자들의 볼멘소리와 괜히 야구가 욕을 먹는다며 지상파 중계가 필요없다는 야구 팬들의 항의가 일으키는 소란은 매년 벌어지는 일이다.
와일드 카드 경기는 비가 내려 우천 취소돼 드라마가 정상적으로 방영됐으면 좋겠다는 ‘달의 연인’ 시청자들의 저주와 야구 팬들의 대립 속 진행됐다. 3시간 안에 경기가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전망을 뒤엎고 KIA가 LG를 손쉽게 이기면서 2차전까지 끌고갔고 오후 9시 26분 한참 전에 승패가 갈리는 기적이 발생했다. 정상 방송을 기다리며 팔자에도 없는 야구 중계를 보고 있다고 투덜거리던 ‘달의 연인’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본 방송 사수를 위해 집결했다. 결방 가능성이 알려진 후 하루 동안 벌어진 팬덤의 무서운 응집력과 강한 목소리는 이 드라마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 jmpyo@osen.co.kr
[사진] SBS 제공, '달의 연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