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가 꿈이었던 한 소녀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레코드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들의 사연을 곧잘 읽어줬던 그 소녀는 어느덧 우상이었던 이문세의 라디오에 출연해 10분 코너를 진행하는 작은 꿈을 이뤄냈다.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한 이후에는 MBC의 인기 라디오 FM4U ‘두시의 데이트’ DJ 바통을 이어받아 무려 3년 3개월 동안 우리의 오후 2시를 책임져왔다.
지난 달 23일 ‘두시의 데이트’에서는 박경림의 마지막 생방송이 진행됐다. 이날 박경림은 하차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진행을 이어갔는데, 결국 울먹이는 한 청취자 모녀와의 전화연결에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쩐지 지금까지 ‘츤데레’(쌀쌀하지만 속으로는 정이 깊다는 의미의 신조어) 같은 면모를 보인 ‘두시의 데이트’ 청취자들이었지만, ‘림디’(DJ 박경림의 애칭)를 보내기가 많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늘 헤어짐에 서툴고 익숙해지지 않는 듯싶다.
애청자들은 물론 박수홍과 이문세, 김현철, 샤이니 민호 등 많은 스타들의 격려 속에서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했다. 그녀의 바통을 이어받아 ‘두시의 데이트’는 지석진이 진행을 맡는다. 그에게 부탁하는 말을 전하자면 어떤 것이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워낙 잘하는 선배니 바랄 것은 없고 그저 ‘두시의 데이트’ 가족들에게 선물도 많이 주고 칭찬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애정 어린 답변이 이어졌다. 박경림에게 ‘두시의 데이트’는 이렇게 마지막까지 애틋했다.
다음은 박경림과 나눈 일문일답.
-마지막 생방송 진행할 때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고마웠다.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면서 3년 3개월이나 할 줄 몰랐다. 과분한 프로였고. 개편 때마다 이번까지 하더라도 감사한 프로라고 생각했다.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너무 값지고 고마웠고 또 소중했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그런 감정과 슬픔이 올라왔던 것 같다.
-매일 하던 라디오인데 끝나니 시원섭섭한가.
▲허전한 건 분명 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한 게 ‘두시의 데이트’는 낮이지 않나. 심야였으면 그 시간에 원래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니까 매일 움직이는 습관이 돼서 되게 힘들었을 것 같다. 낮은 원래 움직이는 시간이니까 지금 공연준비도 하고 있고 행사하고 아이 때문에 움직이기 때문에 리듬상 ‘지금 이 시간에 가야되는데’라고 헛헛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지인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던 막방이었는데.
▲만날 때도 잘해야 하지만 헤어질 때 느낌이 다시 만날 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시작보다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청취자들도 마찬가지고 인터뷰도 마찬가지고 저는 모든 게 그렇다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 느낌이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 좋으면 그래야 또 만나고 싶지 않을까.
-박수홍 씨는 스튜디오에서 ‘라디오가 꿈이었던 소녀가 꿈을 이룬 모습이 감격이었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로 앞에서 못했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해보자면?
▲그날은 정말 저한테 잊지 못할 방송이었다. 저는 박수홍 씨 팬클럽을 만들었고, 또 그렇게 쫓아다니던 수홍 아저씨가 함께 하러 와주시고 이 모든 게 꿈같다. 꿈을 10년, 20년 꾸니까 이뤄진다.
-이문세 씨는 전화로 많은 명언을 쏟아내며 격려해주셨다.
▲문세 오빠는 제가 꿈꾸던 DJ 롤모델이었다. 그분이 했던 ‘별밤’, ‘두데’를 제가 했다. 중간에 그분의 라디오에서 10분 코너를 했던 사람이 3년 3개월 마이크를 빌릴 수 있었다는 게 꿈같다.
-그밖에 전하지 못했던 많은 분들의 감사 인사에 화답해보자면?
▲청취자들에게만 인사를 전하다 끝났는데 저와 함께 했던 모든 스태프, 국장님, 담당PD, 작가, 조연출 한 분 한 분 다 감사하다. 수많은 게스트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원래 라디오 출연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나왔던 분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청취자분들. ‘목소리 듣기 거북해요’부터 ‘안 들으면 섭섭해요’가 될 때까지 가족이 되는 과정을 함께 한 거다. 모두가 ‘두데를 함께 만들어주셨다. 진심으로 고맙다.
-지석진 씨가 후임으로 합류했다. 라디오를 맡기면서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나.
▲워낙 저보다 경험이 많으시고 라디오 경험도 있으신 분이다. 지석진 씨에 대해서 잘해줬으면 그런 건 없다. 그저 ‘두데’ 가족들에게 선물도 많이 주셨으면 좋겠고 칭찬과 응원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또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잘한다. 말장난 하는 걸 좋아해서 잘 맞을 거다. 딱 찾기만 하면 ‘포텐’(잠재력) 터지는 거다. 아재개그를 좋아하니 원 없이 펼치시길. / besodam@osen.co.kr
[사진]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