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이미 병행활동이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와 배우는 분명 다른 전문직이다. 변별성은 매우 많은데 일단 나이와 경력의 일정 수준에서 확연하게 달라진다. 어느 정도까진 세월이 흐르고 경력이 쌓일수록 가창력과 연기력은 함께 향상된다. 그럼에도 가창력은 타고나지만 연기력은 세월의 더께로 점차 완성된다는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1960~70년대의 ‘꼬마 신랑’ 김정훈부터 ‘월드스타’ 강수연까지 어릴 때부터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하는 배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배우’는 대기만성형이다. 건강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늙을수록 더 무르익은 연기력을 펼치기 마련이다. 만 80세의 오현경은 암투병과 교통사고 등을 이겨내며 쉬지 않고 연극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새까만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반면 가수는 노쇠화가 심해지면 가창력이 자연스레 떨어지기 마련. 일정기간 활동을 쉰다면 그 하락세는 동반하강한다. 체력저하는 폐활량을 떨어뜨리고 따라서 전성기의 폭발적인 노래솜씨를 뿜어내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그래서 조용필이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다만 그가 예전처럼 활발한 방송활동과 밤무대활동을 병행했다면 대형콘서트 같은 훌륭한 무대를 꾸미는 것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배우 세계에서 ‘꽃미남=연기파’란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쉽지 않다.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김윤식 등은 연극무대를 통해 밑바닥에서부터 고생을 하며 차근차근 계단을 밟음으로써 탄탄한 기본기와 쓰디쓴 경험에서 우러난 표현력을 다져왔지만 대다수의 ‘꽃미남’들은 외모 하나로 하루아침에 배우로 발탁돼 스타덤에 오르기 때문이다.
‘꽃미남’이라고 하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기와 부를 누리는 게 당연한 ‘권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배우도 있다. 정우성 원빈 강동원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계로 진출한 이후 이들은 영화를 위한 홍보 외엔 브라운관 나들이가 거의 없고, 특히 드라마완 담을 쌓고 살고 있다. 그런 행보는 신비주의를 부추김으로써 희소가치라는 연예인 최고의 경쟁력확보로 이어진다.
현 시점에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외모와 연기력에서 보증수표라면 강동원 원빈(이상 스크린), 유아인 박보검(이상 스크린+브라운관 혹은 브라운관)이 아닐까? 물론 정우성은 고집스럽게 영화배우 외길을 걷고 공유 역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송중기 조인성 유승호 등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고른 성공의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타이밍 기준이다.
원빈은 최고의 신비주의적 존재감을 보이고 있으며 ‘아저씨’ 이후 개점휴업 상태임에도 캐스팅 순위에서 항상 첫 번째다. 강동원은 비주얼 하나만으로도 화보라고 평가받는 아우라를 뽐낸다. 유아인은 의외의 악역 캐릭터에서 그동안 꼼꼼 숨겨왔던 옴므파탈적 연기솜씨를 발휘한 뒤엔 현실에선 오히려 그와 정반대의 반듯한 정신세계와 오피니언리더쉽의 개념을 보여주며 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박보검은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몰이를 하는 ‘꽃미남’이다. KBS2 ‘1박2일’을 통해 매너 좋고 심성 고운 청년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한 그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놀라운 연기력을 발휘하며 이름처럼 뭇 여성들의 ‘보물’이 됐다.
#강동원
사실 영화 ‘검사외전’은 배급사인 쇼박스가 살짝 걱정한 작품이다. 황정민과 강동원이란 투톱에 이성민이란 연기파로 매조졌으니 걱정이 없을 법도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우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조합으로 크게 성공 못하면 대미지가 배가되기 때문.
그 걱정의 바탕은 구성과 플롯이 매우 상투적이고 진부하며 메시지가 약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걸 이겨내고 흥행으로 이끈 것은 강동원의 ‘붐바스틱 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맹활약은 눈부셨다. 어차피 황정민이야 관객이 연기력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뚜껑을 열고나면 잘해야 본전이다.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추구해온 강동원의 선택은 이번에도 맞았다. 장난기 넘치는 도술사(‘전우치’),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반가의 어긋난 영웅(‘군도: 민란의 시대’) 등과 확실히 다른 캐릭터였다. 이기적이고 허세에 가득 찼으며 의리나 순정 등의 인간미와는 거리가 먼, 그러나 결국 나약하고 인간적인 본성에 충실한 캐릭터는 강동원이란 배우가 보유한 우월한 비주얼에 의해 방점을 찍었고, 그렇게 모든 여성 관객들의 발길을 마치 마술피리라도 부는 듯 끌어들였다.
그러나 핸디캡은 있다. 아무리 드라마에 발길도 안 한다고 쳐도 요즘 다작이다. 2014년 ‘군도’ ‘두근두근 내 인생’, 2015년 ‘검은 사제’ ‘검사외전’, 그리고 올해 ‘가려진 시간’ ‘마스터’ 등 매년 2편의 개봉작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박보검
박보검의 신화는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열려있고, 그러나 그건 어떻게 정도를 걷는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가시밭길의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2011년 영화 ‘블라인드’의 조연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시작한 박보검은 희한하게도 그 빛나는 용모가 그동안 눈에 잘 안 띄었다. 2015년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과의 호흡을 통해 비로소 빛을 본 뒤 곧바로 KBS2 ‘뮤직뱅크’의 MC로 발탁되며 비로소 ‘나 연예인입니다’라고 외친 그는 이제 ‘구르미’로 최소한 국내에서만큼은 또래 중 최고다.
그런 그가 놀라움을 주는 배경은 그 나이(만 23살)에 구사하기 힘든 디테일한 표현과 대사를 씹고 굴리고 돌리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디테일한 연기는 얼굴의 이목구비 안에서 펼쳐지고, 그 외 손과 손가락, 혹은 어깨나 다리의 움직임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박보검은 멜로의 틀에서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기본적인 희로애락은 물론 당황 절망 안타까움 불안 포기 기다림 등의 다양한 감정을 눈동자와 입술의 움직임으로 표현해낸다. 만약 손과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까지 연출이 아닌 그의 자발적 연기라면 천재다.
배우로서의 기본인 발성과 발음 또한 우월하다. 특히 매 시퀀스마다 바뀌는 호흡의 조절을 통한 발성과 대사의 구사력은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 매 단어 혹은 음절을 호흡을 통해 끊고 맺고 잇는 능력은 때론 얄미울 정도의 수준이다.
핸디캡은 역시 일천한 경력이다. ‘구르미’의 영 역이나 파트너가 김유정이란 점은 그에게 있어선 당연했다기보다는 운 좋은 천혜의 기회였다. 예전의 ‘꽃미남’의 대명사 조인성은 2000년 데뷔한 이래 매번 잘생겼다는 말만 들었지 연기 잘 한다는 말은 못 듣다가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를 통해 비로소 비난에서 벗어난 뒤 2년 후 ‘쌍화점’으로 ‘이제 좀 한다’의 성과를 얻었다. 박보검은 아직 ‘믿고 보는 연기’라기엔 배역에 따라 거리가 좀 있다는 의미다.
‘차이나타운’과 ‘구르미’에서 보여준 박보검이란 배우는 어떤 시각에선 일맥상통하다. 여전히 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따름이다. ‘착한 남자’에서 끝까지 자신의 여자를 지켜주려 안간힘을 쓰며 성장하거나, ‘태양의 후예’에서 아예 처음부터 강한 남자였던 송중기와 다른 점이다. 결국 스스로 강동원처럼 배역(작품)을 잘 선택함으로써 선배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