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MBC ‘W’의 ‘미친개’를 기억하시나요? 극 중 이름인 박민수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미친개라는 별명에 꼭 들어 맞는 돌+I 연기가 일품인 캐릭터였는데요. 이 인물을 완벽히 소화해 살린 것이 배우 허정도입니다. 익숙지는 않은 이름이지만, 이 작품 저 작품에서 많이 보셨을 듯도 합니다.
서른에야 배우를 시작한 그는 나이에 비해 경력이 짧은 편입니다. 그런데 연기력만은 경력이 무색할 만큼 탄탄하죠. 올 초 tvN ‘기억’에 등장했고, 영화 ‘범죄의 여왕’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인 허정도는 ‘W’에서 대중의 뇌리에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배우 심은경과 함께 한 영화 ‘걷기왕’은 그가 배우로서 내딛은 또 한 발자국입니다.
지난 12일 열린 ‘걷기왕’ 기자간담회에 나타난 허정도에게서 든든한 바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참 어린 배우들 사이에서 때로는 연장자로서의 듬직함을, 때로는 후배로서의 재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죠.
그는 ‘걷기왕’에서 육상부 코치 역을 맡았는데요. 주인공 만복(심은경 분)의 담임 선생님을 짝사랑하며, 그래서 언뜻 구제불능으로 보이는 만복을 육상부에 받아들이죠. ‘W’의 미친개 만큼이나 장난스럽고 능청스러운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애드리브도 상당했을 것만 같았죠.
이에 대해 허정도는 “애드리브를 많이 준비한 장면이 있었는데, 훌떡 날아가 버렸습니다”라고 백승화 감독을 원망스레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연기를 하면서 나오는 말들 중 재미있는 것들을 찾으려 노력했고, 물론 준비한 것도 있었죠”라고 덧붙였습니다. 애드리브 준비는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죠.
언급했듯 허정도는 서른에 처음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는 “아마 배우를 시작한 나이로 치면 이 가운데 제가 가장 늦을 것 같은데, 저도 많이 헤맸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혹은 ‘성공적으로’ 같은 수식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극 중 만복처럼 조금 느렸던 허정도의 혼란과 갈등이 공감됐습니다.
그는 “무엇이 나의 길인지,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 때는 철학 공부도 해 보고. 이쪽저쪽 기웃기웃 하면서 제가 언제 가장 행복하고 설렜는 지를 체크해 왔습니다”라며 “‘즐겁니?’ ‘좋아?’라고 스스로 질문해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지난날을 되돌아봤습니다. ‘걷기왕’을 ‘따뜻한 장난꾸러기’라고 표현한 허정도에게서 영화를 향한 애정 역시 느껴졌습니다. 그의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신 예비 관객들이라면, 속도주의와 성공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영화에도 마찬가지로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는 20일 개봉됩니다./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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