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신작 ‘그물’은 언뜻 시대착오적 드라마로 보인다. 어쩌다 보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남한으로 흘러들어온 북한 어부가 간첩으로 몰려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어부는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 모독적 발언을 듣는다.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간첩임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감금 당해 재떨이로 얻어 맞는 광경은 과연 21세기에 가능한 일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동시기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이 같은 ‘그물’ 속 비합리적 상황들이 전부 현실임을 낱낱이 폭로한다. 간첩으로 몰린 탈북 공무원 유우성의 증거보존 재판 기록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이념 전쟁이 애먼 개인을 어디까지 괴롭힐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낀 화교 출신 유우성은 중국으로 탈북한 후 다시 한국으로 와서 공무원이 된다.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었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유가려는 고문 끝에 그가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유가려는 ‘자백’을 통해 국정원 수사관들로부터 주먹과 하이힐 뒷축으로 폭행을 당하고 갖은 정신적 압박을 당했던 당시를 술회한다. 심신이 약해진 상태에서 거짓 진술을 하면 오빠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꾐은 결국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들고 만다. 유가려 역시 법정에서 스스로 한 자백과 싸우다가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물’의 남철우(류승범 분)도 마찬가지다. 남측 조사관(김영민 분)은 아무리 봐도 간첩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남철우를 끔찍하게 다룬다. “왜 엔진을 태웠냐”는 채근으로 시작된 고문은 그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자행되는 폭력으로까지 번진다. 남철우로부터 없는 증거를 짜내기 위해 종이와 펜만 던져 주고 그의 모든 것을 몇 번이고 적어 제출하라는 요구는 차라리 맞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귀순 회유와 무자비한 폭행 사이에서 제정신을 잃은 남철우는 ‘자백’의 유가려와 같은 선택을 한다. 간첩임을 인정하면 집에 보내준다는 조사관의 약속을 믿고 만 것이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진 뒤 남과 북은 이처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여 왔다. 이념 때문에 갈라진 나라니 안보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측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의 전파자이자 체제의 감시자, 간첩이었다. 국가 전복의 야욕을 품은 간첩의 존재는 공공의 적이 되고, 이를 처단한다는 목표가 체제를 더 단단히 집결하게 만든다. 끊임 없이 발견돼야만 하는 간첩으로 몰린 무고한 시민들의 발생은 그 부작용이다. 간첩을 만들기 위해 국가는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이 지리한 다툼의 희생양으로 소비된 이들은 죽거나 모든 것을 잃은 채 아직 살아 있다.
‘그물’의 남철우도, ‘자백’의 유우성과 유가려도 스스로를 그물에 걸린 고기에 비유한다. 사상보다 내 가족과 전재산인 배가 중요하다며 눈을 부릅뜨는 남철우, 국가에게 더 이상 내 가족을 괴롭히지 말라고 울부짖는 유우성의 피맺힌 절규가 동시대의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오판보다 더 억울한 조작 사건 앞에서도 이들은 사과를 받지 못한다. 이념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이다. 찢고 나오기에는 이들의 힘이 다 빠졌다.
시대의 ‘그물’에 걸려 끝내 거짓 ‘자백’으로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 가련한 이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비극적 풍경이다. 거짓을 말해도 죽고, 참을 말해도 죽는다면 개인을 위한다는 국가의 목적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지, 끝내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각 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