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강호동 이경규 '한끼줍쇼'? 투톱시대의 부활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22 13: 38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지난 19일 첫 방송된 JTBC ‘한끼줍쇼’가 3%에 가까운 시청률로 상큼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영화건 드라마건 예능이건 인해전술이 대세인 요즘 ‘딸랑’ 이경규와 강호동 두 명만 내세운 용감한 형제의 도전임에도 이렇게 순조로운 출발은 두 사람의 예능감이 이끄는 것인가, 포맷이 훌륭한 덕일까?
한때 강호동은 유재석과 함께 한국 예능계의 양대산맥이었다. 유재석은 정통 개그맨이지만 강호동은 프로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스포츠인으로선 이례적으로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2011년 강호동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과소납부는 결국 말장난이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인데 엄청난 액수를 ‘안’ 냈다. 1년 뒤 여론에 ‘못’ 이기는 척 슬며시, 그리고 처음으로 SM이란 거대 기획사에 둥지를 틀고 돌아왔지만 예능계의 판도는 많이 달라져있었고 그 역시 예전의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있었다.

복귀한 프로그램은 별로 달라질 게 없었고, 새로 론칭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죽을 쒔다.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우리 동네 예체능’도 결국 막을 내렸다.
유재석은 여전히 승승장구했다. 그동안 새로운 예능의 대세가 수도 없이 뜨고 졌지만 그는 요지부동 정상을 굳건하게 지켰다. 살짝 반전은 있었다. 예능계의 선두에서 찾아보기 힘든 나이인 50대 후반으로 가는 이경규가 부활한 것이다.
‘한끼줍쇼’의 순조로운 출발은 이경규가 힘차게 이끌고 강호동이 열심히 뒤따른 덕일까?
데뷔 초 강호동은 이른바 ‘규라인’이었다. 1992년 방송가를 기웃기웃할 때 이경규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듬해 MBC 특채 개그맨으로 진로를 바꿨다. 스포츠스타 출신 개그맨은 처음. 요즘 예능계에서 맹활약 중인 안정환 서장훈 등은 강호동이 없었다면 다른 길을 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만큼 ‘개그맨’ 강호동은 그 의의가 크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상파 3사의 예능판도는 MBC가 쥐락펴락했다. 그 전에도 그랬고 당분간도 그랬다. 물론 SBS의 개국으로 방송가의 판도가 변할 즈음이라 수년 뒤엔 3사가 거의 동등해지거나 MBC가 살짝 열세였지만 적어도 이경규와 강호동이 있던 시절의 MBC는 예능왕국이었다.
이경규는 무대 밖에서 강호동을 가르쳤지만 정작 강호동은 1994년 이경규가 없는 ‘오늘은 좋은 날’의 ‘소나기’ 코너를 통해 성공했다. 씨름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커다란 덩치로 새색시처럼 걸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그의 징그러운 애교는 예능계의 키치패션이 됐다.
이경규는 지금도 MBC 예능의 중심인 ‘일밤’의 전신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자리를 잡은 동시에 이 프로의 중심을 잡아준 일등공신이다. 이 프로가 배출한 스타만 해도 그와 강호동을 비롯해 김국진 신동엽 남희석 최수종 주병진 이문세 이수만 이홍렬 이휘재 이훈 등 수두룩하고, 스타라면 으레 이 프로에 출연했고, 이 프로에서 풋풋한 매력을 뽐냈던 신예들은 대부분 현재 각 분야의 정상에 포진해있다.
하지만 세월의 힘은 인간이 막을 수 없다. 어느덧 이경규는 새 물결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강호동은 유재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미 강호동은 이경규의 품을 벗어나 독립했고,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1995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전부였다. 그리고 재회한 이번엔 처음으로 아예 투톱이 됐다.
이미 대본의 영향력이 미미한 진짜 체험을 관찰하는 포맷이 예능의 대세가 된 지는 꽤 됐다. 그런 시각에서 ‘한끼줍쇼’는 아예 ‘앵벌이’ 성격이다. 두 사람이 일반인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식구(食口)가 되기 위해 아무 집이나 무작정 초인종을 누르는 게 전부다. 여기서 두 사람의 ‘무모한 도전’이 재미를 줄 것이고, 갑자기 만난 일반인과의 예견치 못한 드라마가 감동을 줄 것이며, 이 괴로운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두 사람의 호흡 혹은 갈등이 서사를 쓸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 일반인은 이경규와 강호동을 몰라보거나 별로 반기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미션 종료시각인 오후 8시까지 서울시 망원동 시민 중 누군가와 같이 저녁을 먹는 데 실패하고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방송시간 내내 시청자들은 즐겁거나 가슴이 아렸다.
이 프로의 대단한 반전은 별로 기대할 수 없지만 드라마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대본의 유무 여부를 떠나 제작진이 초심만 잃지 않고 연출을 이경규와 강호동이란 예능에 길들여진 두 야생마를 초원에 풀어놓는 데만 집중한다면 돌발의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건 이경규는 이미 닳고 닳은 ‘고수’고, 강호동 역시 그에 못지않은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능력도 경험을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다. 애드리브가 중요한 이 프로그램에서 경험은 최고의 무기다. 김수미가 70 가까운 나이에 아직도 영화 드라마 예능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애드리브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주로 스튜디오에서 잔뼈가 굵은 이경규지만 강호동은 ‘1박2일’의 일등공신이란 사실이 증명하듯 야생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구걸행각을 일삼아야 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상 이경규와 강호동은 몸도 마음도 괴롭겠지만 사실 평이하고 평범한 발상을 론칭으로 이뤄낸 제작진의 기획에 고마워해야 마땅할 것이다. 1회만으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어쨌든 이날 방송이 보여준 내용은 예능 이상의 교양 혹은 시사적 성격을 띠었다.
망원동은 서울의 표본에 가까운 동네다. 강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달동네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정’이 과소비되던 우리네 서민의 동네와는 많이 달랐다. 아무리 가난해도 손님에게 찬밥이라도 먹여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었던 우리네 가정이었다. 거지가 찾아오면 개밥 몫이었을망정 내어주던 우리네 사회다.
하지만 대중의 정서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정과 인심대신 경계심과 단절감이 출렁거렸고, 유머와 정신적 물질적 여유가 사라져있었다. 저녁식탁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족의 화합의 자리인 동시에 자그마한 축제의 마당이었지만 망원동에선 조촐한 메뉴일지언정 온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작진이 그걸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기획서 안에 기재된 내용이 아니었다면 그건 이경규와 강호동의 능력에 뒤따른 행운(?)이었을 것이다. 이런 예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요즘 JTBC가 대세인 이유일 수도 있다. 강호동이 이경규를 만나 개그맨이 됐고 20여년 만에 이경규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면, 위기 때 JTBC를 만난 것은 천운이다.
시청자가 낯선 집 문을 두드리며 한 끼를 구걸하는 이경규와 강호동에서 어디서 많이 봤다는 기시감이 들 가능성이 높다는 복선이 이 프로그램의 진면목일지도 모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한끼줍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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