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우는 유쾌한 ‘아재’였다. ‘잡아야 산다’ 이후 10개월 만에 영화 ‘두 번째 스물’로 돌아온 27년차 배우 김승우에게 연기는 여전히 도전이고 즐거움이다. 이제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서 쉰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늘 멜로를 좋아했고 언젠가는 원숙한 느낌의 멜로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배우는 늘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승우가 이렇게 재미있고 털털한 ‘아재’인지 몰랐다. 말 한마디에서 유머러스함이 전해졌고, 농담을 던진 뒤 익살맞은 표정을 지을 때는 마치 개그맨 같았다. 맞다. 그는 코미디도 되는 천상 배우였다.
김승우는 지난 2012~2013년께 박흥식 감독으로부터 ‘두 번째 스물’의 시나리오를 받았었다. 그러나 가정을 꾸린 남녀가 낯선 곳에서 만나 제2의 사랑을 꿈꾼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출연을 거절했었다고.
“2012년인가? 2013년에 받았을 때는 안한다고 했었어요. 3년인가 있다가 다시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내 손을 떠난 시나리오니까 어디선가 잘되고 있겠거니 싶었는데 다시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3년 전과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처음엔 ‘이래선 안 되지’였는데 감독님에게 설득을 당했어요. ‘하겠다’고 생각을 바꿨을 때 민구와 민하의 사랑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김승우는 작품 속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도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가 있다는 철학을 지키고 있다. 사랑의 극단, 진부한 불륜 작품이라고 여겨지면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보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저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이래선 안 되지’ 싶었어요. 막장, 불륜을 싫어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얘기는 없거든요. 내가 해도 불륜이에요. 하지만 3년 전에 비해 시나리오가 크게 달라져있었고 결국 감독님에게 설득당해 하게 됐어요. 내가 지질한 로맨스를 잘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두 번째 스물’에서 김승우는 나이 마흔에 떠난 이탈리아에서 옛 사랑 민하(이태란 분)와 재회한 영화감독 민구를 연기한다. 배우에게 주어진 역량과 인생만큼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고 할까. 지질하지만 볼수록 매력이 있는 민구는 김승우라는 배우를 통해 완성됐다. 그간의 삶을 통해 얻은 경험,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깨달음을 덧씌워 ‘김승우표’ 민구를 창조해냈다.
“가정이 있는 남자가 외지에서 옛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낀다는 게 도덕적이지 못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감독님을 믿고 (작품 속)민구와 민하의 사랑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낯선 곳에서 이방인과의 사랑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긴 하는데, 옛 사랑을 낯선 곳에서 만난다는 게 우리 영화의 포인트예요. 그런 것들에 설득이 된 것 같네요.”
잊지 못할 첫사랑의 기억을 지닌 두 남녀의 운명 같은 재회를 그려낸 영화 ‘두 번째 스물’.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배경으로 김승우, 이태란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승우는 이태란에 대해 “사실 이태란 씨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데 만나 보니 털털하더라고요. 요즘 만찢남이 인기가 많다던데, 이태란 씨는 정말 시나리오 찢고 나온 여자예요. 민하 역할에 잘 어울리는 친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승우의 로맨스는 그에 대해 알고 봐야 더 재미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해변의 여인’ ‘로즈마리’ ‘남자의 향기’ 등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과 넘치는 개성으로 인간미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마초적인 마스크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장난기 가득한 모습부터 진지한 모습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 김승우. 이미 오랜 시간을 걸어왔지만, 앞으로 그가 걸어 나갈 길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기가 많다가도 갑자기 사라진 배우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리 대단하진 않아도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옆집 형 같은 배우가 되고 싶네요. 사람들이 ‘우리 옆집 아저씨도 저렇게 연기할거야’라고 생각하는 배우말이에요.”/ purplish@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