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관명 칼럼] 시간을 2011년으로 돌려보자. 6월4일부터 12월17일까지 KBS 2TV에선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톱밴드’ 시즌1이 방송됐다. 김도균 신대철 정원영 신해철 남궁연 체리필터 노브레인 한상원 등 국내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코치로 총출동했다. 여기에 훗날 인디신을 장악하게 될 아마추어 밴드들 역시 비장한 각오로 경연에 나섰다. 예선을 거쳐 16강전에 오른 밴드 면면만 봐도, 게이트플라워즈, 아이씨사이다, POE, 엑시즈, 톡식, 브로큰발렌타인, 제이파워, 하비누아주 등 그야말로 ‘화려했다’.
이제 포커스를 ‘톡식’에만 맞춰보자. 톡식(TOXIC)은 기타 및 보컬에 김정우, 드럼에 김슬옹으로 구성된 단출한 2인조 밴드였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에 거친 록음악과 일레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한 독특한 색깔로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다. 더 눈길을 끈 건 이들이 선곡한 노래와 이를 ‘톡식화’시켜 내세운 무대였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나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같은, 뜻밖의 ‘아재 스타일 밧 구디스’ 곡들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당시 이들의 나이가 김정우 24세, 김슬옹 19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의외의 선곡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16강전에서 브로큰발렌타인, 8강전에서 2STAY, 준결승전에서 제이파워,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에서 POE를 꺾고 마침내 우승을 거머쥐었다.
다시 현재로. 톡식의 김슬옹이 첫 솔로앨범 ‘414’를 냈다. ‘톱밴드’ 우승 후 거의 5년만이다. 자, 이제, 에둘러 갈 필요가 전혀 없다. 때로는 단도직입이 옳다. [3시의 인디살롱] 첫회, 김슬옹과의 인터뷰, 스타트.
= 김정우는 뭐 하나.
“공익근무중이다. 11월에 소집해제다.”
= 톡식 앨범도 내야겠다.
“빠른 시일안에 앨범을 내겠지만, 일단은 내 일이 급하다. 우선 일본에서 ‘김슬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프로모션을 열심히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밴드시장이 넓다보니까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국내활동 역시 설 수 있는 무대는 모조리 다 설 것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벌써 스물다섯살이 이번 앨범이 마지막 앨범일 수도 있고, 이 음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 ‘톱밴드’에선 왜 그렇게 산울림 노래를 자주 불렀나.(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도 사실 같은 서울대 출신인 산울림의 김창훈이 작곡한 곡이다.)
“어렸을 적부터 좋아한 분들이었다. 한국에서 밴드 하셨던 아티스트 중에서 모델로 삼을 만했고, 실제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정우 형의 아버지가 샌드페블즈의 기타리스트셨다. 어쨌든 ‘톱밴드’ 끝나고 김창훈씨가 밥을 사주셨다. 아우라가 따뜻하시더라. 그리고는 노래를 한 곡 주셨는데 그게 톡식의 ‘이상형’이다. 또 김창완씨와도 막걸리를 자주 마셨는데, 술 잘 먹는 후배들을 예뻐하시더라.”
= 솔로 앨범 얘기를 해보자. ‘414’가 뭔 뜻인가.
“내 생일이다. 나, 김슬옹을 오롯이 보여주자는 뜻에서 지었다. 그동안 톡식 앨범을 많이 사랑해주셨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나의 100%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각오로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코멘터리를 해달라(이때부터 블루투스 스피커로 새 열범 곡들을 함께 들었다). 첫곡은 타이틀곡 ‘잭팟(Jack Pot)’이다. 원래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나? 심지어 랩까지?
“하하. 노래 잘 못한다. 내가 봤을 때 노래는 그냥 (음악을 이루는) 악기의 한 요소다. 데이빗 그롤은 너바나의 드러머였지만 보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테크닉적인 면보다는, 사운드적인 면에서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레드핫칠리페퍼스를 좋아했다. 그래서 앨범 전체에 핌프록적인 요소가 많다. 이 곡 ‘잭 팟’에는 내 자신이 음악적으로 큰 도박을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담았다. 그래서 ‘잭팟’이다. ”
= 드럼은 누가 쳤나. 직접 했나?
“김은석이라는 후배가 해줬다. 나는 드럼 어레인지만 하고 연주는 그 친구가 다 했다. 베이스는 아치, 기타는 이세진, 세컨드 기타는 과테말라 형이 해줬다. 나는 전체 디렉팅을 했다.”
= 드럼은 평소 어떤 걸 쓰나.
“스네어만 해도 루딕의 블랙 뷰티나 벨브론즈, 그래치의 스펀브라스 등 5,6개 세트를 쓴다. 이것도 두번 다 갈아엎은 것이다. 심벌은 위치마다 다 다른데 사비안의 AX세트가 메인이다. 물론 질전도 썼었다. 드럼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서 처음 배웠다.”
= 더블타이틀인 ‘리얼라이즈(Realize)’다. 곡이 무척 섬세한 것 같다. 그리고 노래, 잘 하는 것 맞다. 맑고 단단한 고역대 처리가 일품이다.
“전문 보컬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연주곡으로만 앨범을 낼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하더라. 그래서 나름 크게 마음먹고 도전해봤다. 이 곡은 특히 뮤직비디오에 신경을 많이 썼으니까 꼭 한 번 시청해달라. 곡은 사실 특정인을 생각하면서 쓴 것인데, 당시 소중했던 것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내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 ‘있을 때 잘해’, 이런 말인가.
“하하. 그렇다. 뒤늦은 깨닮음, 그런 것이다.”
= ‘R.I.P’라는 곡도 흥미롭다. ‘Rest In Peace‘ 대상이 뭔가.
“아티스트 갖고 장난치는 제작자들이다. 불쌍하지 않나. 음악적으로는 린킨 파크나 림프 비즈킷 등 전형적인 핌프록을 내세우려고 노력했던 트랙이다. 물론 어렸을 적부터 듣고 자란 서태지 선배님의 음악을 실현하고픈 그런 욕심도 있다.”
= 앨범에 ‘잭팟 리믹스’가 담긴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선 일렉트로닉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 갖고 가고 싶은 이유가 컸다. 스테인보이즈 작곡가 팀이 참여해서 코드 진행이나 구성을 원곡 ‘잭팟’과는 완전 다르게 바꿨다. 다른 색감으로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록이라는 음악이 이렇게 일렉에 묻어가도 결코 촌스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하나. 실은 술 먹으면서 듣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웃음)”
= ‘잭팟’ 뮤직비디오도 잘 빠졌다.
“록을 멋있게 보여주고 싶어서 비주얼과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썼다. 돈도 많이 들었다. 장소는 화성의 어성비행장이다. 공중촬영은 드론을 썼다. 그날 서울에는 엄청 비가 내렸는데 그 지역만 안왔다. 기도빨로 된 것 같더라.(웃음) 하여간 오전10시부터 다음날 새벽3시까지 찍고 감기몸살 걸렸다.”
= 뮤지션의 코멘터리를 직접 들으면서 음악을 들으니 귀에 더 쏙쏙 들어온다. 언제나 성원하겠다.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어 나도 좋았다. 아, 그리고 이 얘기 꼭 써달라. 김슬옹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엑스재팬의 히데라고. 히데로 인해서 솔로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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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러볼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