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의 성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편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한국 방송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말하는 톱스타도 없고 집필 역시 무명 작가가 책임졌다. 모 아니면 도였던 이 신선한 시도는 결국 시청률 1위까지 넘보게 되며 방송가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쇼핑왕 루이’는 MBC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다. 기억을 잃은 재벌 3세 루이(서인국 분)가 착한 고복실(남지현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두 사람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세상 물정 몰라 당하고 살면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마치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시청률 꼴찌인 5%대에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두자릿수를 돌파, 현재 1위인 SBS ‘질투의 화신’ 자리를 넘보는 중이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살인 사건이 있고 음모가 도처에 도사리지만 무겁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다. 악역이 가득하나 갈등 구조가 단순하고 악역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부여하지 않는 게 이 작품을 탄생시킨 오지영 작가의 전개 방식이다. 어느 정도 허당기가 있고 잔실수가 많아 주인공인 루이와 복실에게 숨통이 트인다. 갈등을 위한 갈등보다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한 불화 장치만 있기에 갈등이 산적하고 고난이 쏟아져도 짜증 유발이 적다. 더욱이 두 사람을 괴롭히는 악역들이 다소 모자라고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은 웃음이 터진다. 간혹 드라마가 악역들이 날뛰면 답답하기 마련인데 ‘쇼핑왕 루이’는 언젠가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동시에 험한 가시밭길도 유쾌하고 귀엽게 다룬다.
루이가 가족을 찾고 신분을 회복해도 복실에 대한 사랑을 굳건히 드러내고 두 사람을 둘러싼 오해가 오래 이어지지 않는 전개 역시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림이다.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 현실에 답답한 이야기를 보기 힘들어하는 안방극장의 요즘 분위기에 딱 맞는 편안한 이야기인 것. 재밌는 이야기를 만든, 오지영 작가는 대중에게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방송사가 프라임 시간대에 신인 작가를 기용하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이자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터다.
‘제왕의 딸, 수백향’과 ‘미스터백’을 성공시키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상엽 PD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세련된 연출 감각으로 ‘쇼핑왕 루이’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십분 살리는 주인공 서인국과 남지현의 연기 역시 박수받을 만 하다. 서인국은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키우고 싶은 남자 루이를 안방극장에 멋들어지게 소화하고 있다. 연기 호평과 함께 지상파 드라마 흥행 실패라는 개인적인 족쇄도 풀었다는 점에서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로 어느덧 성장했다.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를 하면서 촌스러운 매력의 복실 역을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남지현은 로맨스 드라마 여자 주인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두 배우뿐만 아니라 복실이의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맡은 윤상현의 멋있으면서도 발랄한 매력, 귀여운 악녀 연기로 물오른 미모를 자랑하는 임세미, 막강 조연 군단 김영옥-김선영-엄효섭-윤유선-김규철 등의 빵빵 터지는 연기와 캐릭터쇼는 ‘쇼핑왕 루이’의 시청률 역주행을 이끌었다.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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