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닥터 스트레인지’? ‘인셉션’과 ‘매트릭스’가 동양을 만나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0.27 07: 4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26일 개봉된 마블스튜디오의 또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대놓고 뻔뻔하게 ‘매트릭스’의 철학과 ‘인셉션’의 비주얼을 발판삼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슈퍼히어로들을 총출동시킨 ‘어벤져스’ 시리즈보다 더 화려한 액션에 한층 심오해진 멀티버스(여러 개의 타임라인과 스토리 라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차원의 평행 우주)의 초자연적 다차원 세계와 시공간을 보여주며 도대체 할리우드의 상상력과 그의 형상화의 기술력의 끝은 어디일지 경악하게 만들 따름이다.
차원의 경계를 넘어선 광활한 우주의 다크 디멘션에 신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악의 우두머리 도르마무가 있다. 그는 모든 차원과 시공간을 무너뜨려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수세기동안 살아온 마지막 초능력 마법사의 지도자 소서러 슈프림인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은 뉴욕 런던 홍콩 등 3곳에 지구를 지키기 위한 지부인 생텀을 설치해두고 도르마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녀의 본거지는 티베트 카트만두의 비밀의 사원 카마르-타지. 여기서 그녀는 모르도, 웡 등의 제자와 함께 지구를 지킬 마법사들을 양성해왔는데 최근 수제자 중 한 명인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가 비밀 고서 보관함에 침입해 금서의 한 페이지를 찢어 달아났다. 그는 금지된 주문을 통해 도르마무의 힘을 얻음으로써 다크 디멘션과 지구를 섞음으로써 파괴하려고 한다.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오만하고 출세욕이 강하며 낭비가 심해 슈퍼카와 명품 시계를 즐기는 인간미라곤 찾아보기 힘든 비호감 캐릭터다. 어느 날 빗길에 과속운전을 하며 휴대전화 통화를 하던 중 대형사고를 낸 뒤 양손이 망가진다. 절망한 그에게 후배 의사가 다가와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이 마비된 팽본이란 환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멀쩡하게 걷더라는 귀띔으로 희망을 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실력으로 팽본을 찾은 그는 팽본의 소개로 카마르-타지를 찾아 특유의 건방지되 빠른 학습능력으로 수제자급의 실력을 갖추게 되고 케실리우스와의 갑작스런 대결을 통해 우연히 래버테이션 망토의 선택을 받는다. 자체의 생명력과 엄청난 전투능력을 지닌 이 망토는 자신이 주인을 골라 원래의 능력을 몇 배 급상승시켜준다. 그리고 케실리우스를 앞세운 도르마무의 공격이 시작된다.
일단 비주얼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마블의 선두에 앞세워도 손색이 없다. 평면의 규칙적 분할에 의한 무한한 공간의 확장과 순환을 구현한 판화가 에셔의 예술적 영감을 스크린에서 한 단계 진화해 이뤄낸 기술은 ‘인셉션’을 앞설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다. 마법사들의 능력에 의해 새로운 조형물을 창조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존에 건축된 마천루 등의 건물을 상하좌우로 끊임없이 비틀어 예측불가의 수직 수평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엔 눈이 어지러울 정도.
마법사 및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은 이론적으론 현실조작, 포털 생성, 유체이탈, 차원이동, 염력 등이지만 사실 이 모든 초능력은 ‘엑스맨’ ‘어벤져스’부터 중국 무협지의 판타지 무술 등을 합친 것이다. 마법사들의 무술동작은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터팅에 기초했다고 하지만 토착불교화된 라마교가 정신적인 지주고, 중국의 자치주인 티베트의 문화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산스크리트어로 이뤄진 경전 등이 겹쳐지는 팔 다리의 동선은 다분히 동양의 무술을 따른다. ‘인셉션’의 공간에 담은 ‘매트릭스’의 진화된 확장판이다. 도르마무는 ‘매트릭스’의 데우스 마키나다.
미국 소울계의 슈퍼스타 어쓰, 윈드 앤 파이어의 흥겨운 펑키넘버 ‘Shning star’와 플루겔혼의 대가 척 맨지오니의 대표작 ‘Feels so good’을 틀어놓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며 수술을 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건방짐부터 망토의 장난기까지 곳곳에 포진한 고급스러운 유머가 확실히 차원이 다른 영화라는 것을 입증한다.
빌런 케실리우스의 존재감이 다소 약하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향후 도르마무의 ‘어마무시’한 반격을 복선에 깔아놓아 오히려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준다. 뭣보다 기존에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수준에 그친 것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확장된 철학관과 세계관이 깊은 사색과 울림을 준다.
과학을 이기는 게 마법이고, 육체를 능가하는 게 정신이란 메시지는 다분히 동양적, 밀교적 정서다. ‘장자’의 ‘제물론’의 호접몽까지 슬며시 끌어들여 서양인의 오리엔털리즘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유효함을 보여주는 유머도 잊지 않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양한 곳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가 수양한 어둠의 사도들의 성지 인근이라는 암시도 재미있다.
영화의 소재는 공간 차원 시간 등인데 가장 확실한 주제는 ‘가장 위험한 적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끝은 아니다’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연계하는 노자의 무위자연론이다. 닥터 스트레인저부터 케실리우스, 에인션트 원, 모르도까지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게 맞는지, 섭리를 깨뜨리더라도 평화를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사색한다. 얄미우리만치 현실적인 의사가 마법사가 된다. 지나친 세속적 욕심에 대한 조롱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의 캠페인도 있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이 정도 수준을 보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DC는 잇단 성공에 따른 자가당착에 빠져 퇴폐적 데카당스의 딜레당트 혹은 어설픈 니힐리즘으로 그냥 살천스럽게 부르대는 데 그쳐 실망을 줬지만 시야를 넓혀 톺아본 뒤 명토박을 줄 아는 마블은 참으로 볼수록 영악하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닥터스트레이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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