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이어서 고마웠다. 지난 3개월 동안 ‘대세 배우’ 박보검이 아닌, 남장내시 라온과 사랑에 빠진 열아홉 소년이자 한 나라의 이끌어야 한다는 막강한 책임감을 가진 세자 이영이었던 그의 모습은 안방극장을 울리고 웃겼다.
지난 18일 마침내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종영하며 박보검 역시 이영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 세 자를 되찾았다. 하지만 시청률 20% 돌파부터 5주 연속 콘텐츠영향력지수(CPI) 1위, 월화극 1위, OST 음원차트 1위 등 수많은 기록들을 써내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 만큼 박보검에게도 ‘구르미 그린 달빛’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일 터.
“달만 보면 저희 드라마가 제일 처음으로 떠오를 것 같고 많은 분들에게도 ‘구르미 그린 달빛’이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는 처음으로 도전한 사극이기도 하고, 또 드라마가 아니면 그렇게 아름다운 한복을 입을 일이 없잖아요. 한 순간 한 순간을 다 캡처하고 싶을 정도로 귀한 작품이었어요. 디자이너 분 감사합니다.”
특히 박보검은 이영 역을 통해 까칠하면서도 도도한, 하지만 ‘내 여자’ 라온(김유정 분)에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츤데레’ 매력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바 있다. 그간 수많은 사극 작품들에서 등장했던 세자 캐릭터지만, 그가 연기한 이영에게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천방지축 날라리 세자의 모습이 다른 세자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나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지만 세자라고 하면 언제나 진중한 모습이라고 상상했었는데, 대본을 받았을 때 야망과 꿈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이를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외유내강’이라는 말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또 원작에서는 이영의 냉철하고 까칠하고 도도한 면이 조금 더 부각됐다면, 작가님이 극에서는 그 역할이 진부할 수 있다면서 초반에는 퍼져있고 천방지축 날라리지만, 나중에 성군이 된 모습일 때는 진중해지고 책임감이 강해지고 날카로울 땐 날카로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감독님들과 상의하면서 만들어나가기도 했어요.”
이렇듯 캐릭터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배우의 노력과 열정 덕분일까. 이영이 등장하는 장면은 빠짐없이 최고의 1분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는 대다수가 엔딩 장면이었던 터라 박보검은 ‘엔딩 요정’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됐다.
“엔딩 때마다 순간 시청률이 올라가는 걸 보고 스릴을 느끼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어요. 이 대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조금 더 감동을 주고 와 닿을 수 있을까 고민했거든요. ‘엔딩 요정’이라는 말은 사실 김성윤 감독님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편집 때문에 촬영을 많이 못 나오시고 주로 엔딩을 찍으러 오셨기 때문에 감독님도 ‘엔딩요정’이라고 했어요.”
또한 박보검은 찰떡같은 대사 소화력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방영 직후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불허한다, 내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이영이다, 내 이름’과 ‘반갑다 멍멍아’ 등 다소 오그라들 수 있는 낯간지러운 대사들을 담백하게, 하지만 충분히 설렐 수 있도록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한 덕이다.
“사실 ‘멍멍아’라는 대사가 정말 괜찮을지 고민 많이 하고 연습도 진짜 많이 했거든요. ‘멍멍아’ 할 때 톤을 올려야 하나 내려야 하나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는데 감독님이 좋은 부분만 편집해주셔서 잘 나왔던 거 같아요. ‘이영이다, 내이름’이나 ‘불허한다, 내사람이다’도 그렇고 제가 설렜던 부분은 되게 많았어요. 또 그림이 정말 예뻤잖아요. 어떤 장면을 캡처해도 글귀를 넣어도 될 만큼 구도도 예뻤어요.”
‘하드캐리’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구르미 그린 달빛’을 성공적으로 끌어왔다는 호평을 받는 박보검이지만, 정작 배우 본인은 자신의 연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남다른 연기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극에 처음으로 도전하기도 했고. 워낙 제가 우러러보는 중견 배우 분들이 많아서 선배님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말투도 현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보니까 내 입에 맞게 하려고 노력해서 제 걸로 만들려고 했는데, 방송을 보면 볼수록 제 눈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아쉬움도 조금 남았어요.” / jsy90110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