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국일수록 우리 예능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박명수의 클로징 멘트가 아리고, 쓰리고, 또 기특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충격에 빠진 대한민국에 웃음으로 위로를 줘야한다는 의지와 ‘개콘’ 보다 웃기는 정치권의 코미디 같은 상황에 더욱 분발해야한다는 풍자, 이를 통해 대중의 속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겠다는 책임감이 담긴 한 마디였다.
대중의 심정은 참담하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때문. 연예계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사상 전무후무할 정치권 스캔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판국에 누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듣겠나. 코미디를 보여 웃을 여유도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도 충격과 분노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뛰쳐나가는 마당인데.
연일 터져 나오는 정치 기사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정치권의 이야기는 ‘막장극’ 뺨친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단독 입수와 연달은 특종 보도로 초유의 국정 농단의 몸통을 드러내면서 발동을 걸었고, 종편은 물론이고 뒷짐을 지던 지상파 TV들도 속보 경쟁에 나서기 시작한 상황.
그 어떤 사회 고발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욱 충격적이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 같은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태는 가라앉기는커녕 일파만파로 커져만 가고 있다.
방송인들은 이 같은 언급에 신중을 기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예능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박명수의 발언 정도가 최선일 듯하다. 박명수는 31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KBS cool 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방송을 마무리하는 클로징 멘트를 하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이야기를 토로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연예계는 사실상 비상이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고 신곡이 나온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기가 어려운 실정. 또 홍보를 한다고 한들 쏠리는 관심과 파괴력은 덜 할 수밖에 없는 터다. 그렇다고 정치권을 본격적으로 건드려볼 수도 없는 일이다.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예능 쪽이다. 코미디와 예능은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스트레스를 그나마 해소 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앞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겠다.
'무한도전'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자막으로 반영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은 우주 특집 '그래피티'를 주제로 각종 실험과 훈련 과정을 선보였는데, 박명수가 무중력 실험을 위해 상공으로 올라가기 전 "온 나라가 다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상황에 '요즘 뉴스 못본 듯'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또, 상공으로 향하는 박명수의 화면을 담으며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라고 말했고 무중력 실험에 사용된 풍선을 가리키며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고 자막을 실어내며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에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 '들었어야 할 분은 딴 얘기 중', '알아서 내려와', '빠른 태세전환' 등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애썼다.
방송가의 풍자와 해학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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