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한나를 제대로 발견한 순간이다.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이하 ‘달의 연인’)에서는 황자들의 황위 싸움이 주된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이때 강한나가 연기한 연화 공주는 많은 황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공주. 그녀가 눈에 띄었던 까닭은 그저 홍일점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악녀를 만들어내면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강한나라는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극중 연화 공주는 황자보다 더 독하고 더 똑똑하게 가문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살얼음판 걷듯 살아왔다. 자신의 오라버니 왕욱(강하늘 분)을 황제로 만들려다가 여의치 않자 황후가 되기 위해 왕소(이준기 분)와 거래를 한다. 연화에게 이 모든 것은 황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였다.
배우가 악역을 제대로 연기하면 ‘얄밉다’는 반응이 쏟아지는 법. 웃으면서 살벌한 대사를 날리는 연화의 모습에 시청자들 역시 그랬다. 마냥 연화를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니었고, 꽃미소를 날리는 표정의 특수문자와 함께 ‘달아라’라는 ‘연화체’도 생성됐다. 이는 극중 연화가 자신의 행동을 막아서는 해수에게 벌을 내리는 장면. 원래는 엄중한 대사톤이었지만 강한나는 연화 캐릭터에 맞춰 웃으면서 대사를 소화했다. 이 대사를 통해 연화라는 캐릭터는 제대로 날개를 달았다.
다음은 강한나와 나눈 일문일답.
-연화는 새로운 느낌의 악녀였는데, 어떻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나.
▲한 끗 차이지만 잘 표현하고 싶었다. 완전 못되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마냥 욕심만 있는 것도 아닌 똑똑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김규태 감독님은 연화가 황자였다면 황제가 될 법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초반 미팅할 때 어떤 인물을 참고하면 좋겠냐고 물으니 그런 인물은 없고 책을 읽는다면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를 예로 들어주셨다. 연화는 황궁 일에 직접 가담하는 애라 황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물이다. 공주로서의 품위와 동시에 무거움도 가져가길 바랐다. 그런데 완전 악녀가 아니었기에 더 어렵더라.
-실제로 ‘보보경심’이라는 부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게 연화라는 평도 있다.
▲촬영하면서 생각했던 게 연화도 모든 인물도 그렇고 한걸음이 다 살얼음판 같았겠다는 것이었다. 항상 빠른 판단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한다. 황궁 안에서는 어떻게 보면 살아남기 싸움이다. 그런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꽃미소를 날리는 표정의 특수문자와 함께 ‘달아라’라는 명대사도 탄생했다.
▲‘달아라’는 엄중한 느낌이라고 대본에 쓰여 있었다.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하다가 대본 리딩할 때 웃으면서 ‘네가 원하면 해주지’ 그런 마음으로 웃으면서 했다가 배우들이 다 빵 터지더라. 감독님도 작가님도 그 톤을 기억해 달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현장에서 ‘달아라’를 유행어처럼 많이 사용하시더라. 엄중한 톤을 비틀어서 가볍게 표현하는 게 오히려 연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 굳이 그 장면에서 해수를 힘으로 누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으로 해봤는데 재밌게 받아들여주신 것 같아 가장 기분이 좋다.
-이 작품을 통해 악녀 연기를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사실 연화를 연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얄미울까, 너무 얄밉기만 할까, 여러 가지 고민을 했는데, 그런 점이 다 재밌었다. 이래서 선배님들이 악녀하면서 오히려 더 재밌다고 하셨구나, 더 이해되더라. 다음 역할은 또 새로운 악녀면 재밌겠지만 아직 못해본 인물, 성격이 많아서 다양한 걸 해 보고 싶다.
-황자들 중에 유일한 공주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동안 즐거웠을 것 같다.
▲특별히 공주라긴 보단 모두가 황자들이었다.(웃음) 그만큼 너무 편하게 같은 반 친구들처럼 지냈다. 황자들뿐만 아니라 (이)지은이, (진)기주, (지)헤라 모두 성격이 다 좋다. 서현이랑 붙는 신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친하게 지냈다. 저희 메이킹 보면 다 웃음 참고 있고 놀고 있다. 너무 재밌게 촬영했다.
-촬영장에서 가장 ‘비글’(분위기 메이커)은 누구였나.
▲언제나 항상 단체신에서의 비글은 단연 백현이다. 단체신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랜 시간을 찍어야 한다. 백현이가 정말 재밌게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줬던 것 같다. 이준기 선배님도 항상 즐겁게 에너지를 발산해주셨다. 춤도 추시고 흥에 겨웠던 것 같다.
-극중 남편 이준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워낙 촬영에 들어가면 굉장한 에너지로 집중해서 끌고 가는 힘이 있어서 긴장감을 같이 가져갔다. 둘은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올 수 있는 남녀 간의 긴장, 목적이 다른 것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런 부분을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셔서 그 호흡을 받으면서 열심히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또래 여성 출연자들과 붙는 장면이 별로 없었는데.
▲함께 촬영하는 신이 별로 없어도 다 친했던 것 같다. 기주는 동갑이어서 빨리 친해졌고 촬영 전 엠티에서 같은 방 쓰면서 가까워졌다. 지은이랑은 코드가 잘 맞았다. 먹을 거로 가까워지면서 얘기를 하다보니까 잘 통하더라. 헤라랑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들어가기 전에 가까워졌다. 서현이는 초반 촬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전 현장에 오고 친밀감을 쌓았다. 모든 출연진들이 남녀 떠나 두루두루 친했던 것 같다. 신기했다. 사람도 많은 데 그렇게 모두가 친하다는 게 은근히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극중 대척점에 선 이지은과의 호흡은 어땠나.
▲여자들끼리 신경전처럼 비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두 남자인데, 일단 왕으로 세워야 하는 욱이 오라버니와 초반에 더 가깝지 않나. 연화는 그걸 막아야 하는 입장인 거다. 왜냐면 저에게는 해수가 등장하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는다. 그런 신경전을 계속 벌이게 되는데 현장에서는 너무 재밌었다. 쉬는 시간에는 서로 사진 찍어주다가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해수로 보이더라. 저는 연화가 된 것 같다. 마음이 부글부글한데 누르면서 이야기하게 되고 같이 붙는 신들이 너무 재밌었다. 지은이랑 더 많이 같은 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달의 연인’은 시청자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또 본인에게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나.
▲초반에는 어떻게 보면 발랄한 톤이었고 청춘사극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모든 인물이 계절이 바뀌듯 달라지고 비극적이게 된다. 그만큼 연기자들도 한 드라마 안에서 밝게 시작해서 계절 변하듯이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성장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저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드라마는 끝나지만 연화뿐만 아니라 떠나간 인물까지 많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이렇게 한 드라마 안에 많이 죽을 줄 몰랐다.(웃음)
저한텐 연기적으로 고민도 많았던 작품이고 새로운 시도였다. ‘이렇게 해봐도 될까?’ 고민하던 걸 감독님과 배우들을 믿고 해봤을 때 ‘이렇게 해서 표현되기도 하는구나’ 시도해봤던 값진 경험인 것 같다. 그런 시도들을 통해 겁도 많이 없어졌다.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된 작업인 것 같다. 또 다양한 연령대 신청자들과 가까워진 계기인 것 같다.
-인생캐릭터를 만난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더 중요해졌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일단 지금으로써는 너무 기분이 좋다. 열심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좋아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항상 어떤 캐릭터든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인물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려 한다. 또 다른 멋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고,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멋있게 에너지를 쏟아서 잘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금은 열심히 비우고 ‘힐링’하고 휴식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겠다. / besodam@osen.co.kr
[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