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며 웃을 수 있을까. 대중의 심정은 참담하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때문. 사상 전무후무할 정치권 스캔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판국에 누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노래를 듣겠나. 코미디를 보여 웃을 여유도 있을 리 만무하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도 충격과 분노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뛰쳐나가는 마당인데.
연일 터져 나오는 정치 기사에서 다뤄지는 정치권의 이야기는 ‘막장극’ 뺨친다. 그 어떤 사회 고발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앞서 jtbc가 '최순실 태블릿' 단독 입수와 연달은 특종 보도로 초유의 국정 농단의 몸통을 드러내면서 발동을 걸었고, 종편은 물론이고 뒷짐을 지던 지상파 TV들도 속보 경쟁에 나서기 시작한 상황이다.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는 것. 그리고 사태는 가라앉기는커녕 일파만파로 커져만 가고 있다.
이에 연예계는 사실상 비상이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고 신곡이 나온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기가 어려운 실정. 또 홍보를 한다고 한들 쏠리는 관심과 파괴력은 덜 할 수밖에 없는 터다. 그렇다고 정치권을 본격적으로 건드려볼 수도 없는 일.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예능 쪽이다. 코미디와 예능은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스트레스를 그나마 해소 시켜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
이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부 전개와 자막 등으로 풍자를 시작했다. 먼저 나선 것은 '무한도전'. 지난 29일 방송된 우주 특집에서 각종 실험과 훈련 과정을 선보이면서 현실을 반영했다.
박명수가 무중력 실험을 위해 상공으로 올라가기 전 "온 나라가 다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상황에 '요즘 뉴스 못본 듯'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또, 상공으로 향하는 박명수의 화면을 담으며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라고 말했고 무중력 실험에 사용된 풍선을 가리키며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고 자막을 실어내며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상황에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 '들었어야 할 분은 딴 얘기 중', '알아서 내려와', '빠른 태세전환' 등은 현재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애썼다.
SBS ‘런닝맨’은 아예 기획 자체로 최순실 게이트를 비꼬았다. 아바타 콘셉트로 방송을 진행했고, 아바타를 조종하는 게스트를 ‘실세’라고 표현한 바. 특히 게스트 김준현에게 ‘비선실세’를 떠올리게 하는 ‘비만실세’라는 별명을 붙인 것. 짜장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간절히 먹으면 온 우주가 도와 그릇을 비워줄 것’이라는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5’의 풍자 역시 날카로웠다. 김현숙이 말을 타고 사기꾼을 쫓는 장면에서 “영애씨 말 타고 '이대'로 가면 안돼요”라는 자막이 등장했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말 좀 타셨나봐요? 리포트 제출 안해도 B학점 이상”이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최순실의 자녀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의혹과 불성실한 학업태도를 풍자한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방송가의 풍자와 해학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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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송 프로그램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