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뮤직] 가수 김건모의 진가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6.11.10 08: 4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마이크를 잡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베테랑 싱어 송라이터 김건모는 그렇게 MBC ‘나는 가수다’에서 경력 20년 만에 처음으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고, ‘특혜논란’ 속에 꼴찌의 불명예까지 안았다. 요즘은 SBS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에서 특유의 예능감을 뽐내는 한편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연말에 신곡을 발표하고 전국투어를 한다. 과연 대중은 그의 진가를 알까? 아니, 그가 국내 리듬앤블루스의 선구자고, 대중화의 일등공신이며, 매우 뛰어난 싱어 송라이터임을 제대로 평가해주고 있을까?
#리듬앤블루스의 선구자

부산 출신의 그는 솔로 데뷔 직전 부산이 배출한 록밴드 평균율의 리드싱어로 활약했었다. 그러던 중 신승훈 박미경 노이즈 클론 등이 소속된 당시 최대 메이저 기획사 라인음향에 스카웃돼 김창환이란 걸출한 프로듀서를 만남으로써 화제의 데뷔앨범을 내고 단숨에 가요계에 ‘연탄가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데다 음악까지 리듬앤블루스여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리듬앤블루스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1980년대 김현식과 각별한 음악적 동료였던 엄인호가 이끄는 밴드 신촌블루스와 블루스 전문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맹활약했지만 큰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8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 포크뮤지션 출신의 한영애가 ‘누구 없소’와 ‘루씰’을 히트시키며 잠깐 블루스 바람을 일으키는 듯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만 김건모 등이 활동할 발판을 마련해준 공로만큼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루씰은 블루스의 황제라 일컫는 B. B. 킹이 공연 중 화재가 발생하자 목숨을 걸고 구해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깁슨 ES 335 모델의 기타다. 그 화재가 루씰이란 한 여인을 두고 벌어진 다툼 때문에 발생한 사실을 알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1950년대를 풍미한 블루스 뮤지션 윌리 딕슨이 “블루스는 뿌리이며 다른 모든 음악은 그 열매”라고 말했듯이 미국이 팝뮤직을 전 세계에 유행시킨 이래 모든 대중음악은 블루스에 기원을 둔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온 서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창조한 음악이 블루스고, 여기에 백인식 리듬이 덧입혀지면서 다양한 악기들이 달라붙어 리듬앤블루스가 됐다. 다시 그게 백인의 컨트리앤드웨스턴과 결합해 로커빌리와 로큰롤이 탄생했고, 그게 바로 록의 모든 하위장르를 만들었으며 록이 현재 유행하는 거의 모든-K팝을 포함해-대중음악의 뼈대가 된 것이다.
국내 소수의 뮤지션만 리듬앤블루스에 심취돼있을 때 김건모는 사실상 최초로 제도권에 이 장르로 도전장을 던졌다. 내친 김에 레게까지 도전한 김건모는 승승장구하며 흑인음악을 메인디쉬로 해 재즈와 발라드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하며 그야말로 조용필 이후 최고의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뮤지션으로 맹활약했다.
구강구조부터 성대까지 신체적으로 한국인은 흑인의 소울을 소화해내기 쉽지 않다. 김건모는 아무리 블루스를 흉내 내도 스티비 원더처럼 부를 수 없자 흑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그들이 M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한때 일부러 그것만 목이 따갑도록 피웠다고 한다. 그 정도로 블루스를 완성하고픈 욕구가 남달랐던 것이다.
#싱어 송라이터
그는 김창환 김형석 최준영 윤일상 등 다양한 프로듀서를 파트너로 삼고 작곡과 프로듀싱의 도움을 받아왔지만 작곡 편곡 프로듀싱에도 파트너쉽을 발휘했다. 1집부터 편곡에 참여한 그는 다수의 히트곡을 다른 작곡자로부터 받으면서도 작곡을 게을리 하지 않아 ‘흰 눈이 오면’ ‘사랑이 떠나가네’ ‘짱가’ ‘서울의 달’ 등의 훌륭한 자작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예능인
그가 데뷔하던 1992년은 국내 대중가요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던 때. 발라드와 댄스뮤직, 리듬앤블루스와 트로트가 공존하며 현재의 춘추전국시대의 기틀이 마련되던 시기. 가수들의 위상이 높기 때문에 가수와 제작자들은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출연을 금기시하고 있었다. 가벼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희소가치와 신비성이 떨어질 경우 음반판매 하락으로 직결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시장분석이었다. 그래서 신승훈은 가능한 한 TV 출연을 자제했고, 이승환은 아예 거부한 채 라디오 출연은 반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김건모는 이단아였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지닌 그는 개그 프로그램이건 버라이어티쇼건 가리지 않고 출연해 음악성 외의 개그 본능을 뽐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미디 재능이라기보다는 그 스스로 노는 데 만족했다. 그는 직업에 진중할 줄도 알았지만 더불어 즐길 줄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 날카로운 신경이 곤두서는 자존심싸움인 ‘나는 가수다’에서 대선배답지 않게 떨 수밖에.
김건모는 오늘날 ‘소몰이 창법’이 유행하게 된 데 일등공신이고, ‘폼’ 잡지 않고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연예인의 역할에 충실한 광대이며, 그걸 일이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챔피언’인 것이다.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은 고음대결 양상이다. 청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김건모의 진가를 알아주기 힘든 구조다. 음악의 값어치는 테크닉이 아니라 호소력에 있다. /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