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재벌 3세인 남자 주인공,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여자 주인공, 모두에게 사랑 받는 여주인공을 질투하는 악녀, 여주인공을 지키는 키다리아저씨까지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극본 오지영, 연출 이상엽)에는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은 까닭은 오지영 작가의 특별한 시각 덕이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드라마니까 그렇지~”라는 식의 ‘판타지’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 가난한 여주인공이 재벌 남주인공을 만나 신분상승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내 마음을 오롯이 상대에게 드러내고 한없이 사랑을 주는, 순도 100% 로맨스가 곧 판타지라는 시각이다.
밀고 당기는 연애 기술에 능통해야 연애 고수라 불리고, ‘썸’이라고 불리는 연애 전 단계까지 우리는 어쩌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반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가운데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 분)와 고복실(남지현 분)의 사랑은 특별하다. ‘쇼핑왕 루이’를 집필한 오지영 작가를 만나 작품을 구상한 계기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오지영 작가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처음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처음 목표는 순도 100%의 로맨스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아이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아이가 만났을 때, 그 사랑에 대한 순도가 분명 순수한 느낌이 나올 것 같았다. 사실 처음에 주변에서는 쓰기 편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늘 쓰던 걸 쓰면 요리하기 쉬운 면이 많으니까. 그러나 저는 루이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게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100% 줄 수 있는 게 요즘에는 많이 없어진 시대 아닌가. 그런 사랑을 받는 것이 여자로서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루이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는데.
▲이 캐릭터가 처음에는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지질해도 되냐,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 너무 등골 빼먹는 거 아니냐, 캐릭터를 바꾸자는 말이 있었다. 제가 끝까지 이런 루이 캐릭터로 우긴 건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거 하나로도 여성 시청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흔치 않은 마음이기 때문에. 사실 되게 어찌 보면 예전 드라마 정서라고 해야 하나, 그럴 수 있는데 요즘에 소비 시대를 넘어오면서 사랑도 쉽게 소비되는 시대다. 그런 사랑 말고 순도가 높은 사랑이 판타지가 될 수 있다.
-모든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충분히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 보였다.
▲캐릭터 한 명마다 설정이 바뀌고 다칠까봐 많이 신경 썼다. 처음 쓰는 드라마이기도 하고, 막상 쓰다보면 캐릭터와 연기자 분이 생각나서 함부로 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시놉시스에 썼던 부분은 끝까지 약속 지켜드려야 하고 믿음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완전한 악역은 없었지만, 그렇게 보이게 한 복선이 있었다.
▲백선구(김규철 분) 역이 악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너무 심하게 하면 드라마 톤을 해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조절을 많이 했다. 결국 드라마 결을 지키기 위해 아무 것도 안 하다가 당하는 역할로 나왔다. 연기도 되게 너무 재밌게 해주셨다. 김규철 씨에게도 너무 감사드렸다. 이런 연기를 하신 적이 없었는데 하다보니까 허당과이시더라.
-루이가 쇼핑하는데 ‘픽미’가 나온다거나 복실과 중원 엄마의 ‘대장금’ 신 등 소위 병맛 코드라 불리는 장면이 많았다. 살리기 어려운 부분인데.
▲감독님과 배우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저와 감독님은 공통적으로 B급 코드가 있다. 이 멋진 배우들과 함께 감독님이 찰떡같이 찍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감독님 역시 주저하지 말고 쓰라고 항상 말씀해주셨다. 너무 오버되면 누르는 한이 있어도 너무 처음부터 눌러서 쓰지 말라고 하셨다.
-눈물짓다가도 반드시 웃게 하는 신이 마지막에 삽입돼 톤이 항상 우울하지 않았다. 일부러 밝은 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한 의도가 있나.
▲특히 11회 엔딩에서는 감독님과 저는 울리면서 끝내고 싶었는데, 사건이 휘몰아쳐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부산에서 고복남(의현 분)을 찾는 장면을 당겨서 넣게 됐다. 원래는 루이가 크게 울림을 주고 부산으로 떠나는 것에서 엔딩이었다. 마냥 슬프면 시청자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 besodam@osen.co.kr
[사진]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