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과 공효진의 신들린 연기로 화제 속에 종영된 SBS ‘질투의 화신’. 미니시리즈로는 이례적으로 24부작으로 만들어지며 ‘대하 로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던 이 드라마에는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극을 빛냈다. 그 중에서도 시종일관 고경표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며 때로는 허술한 모습을, 때로는 진지함을 보여 줬던 차비서 역의 박성훈은 ‘질투의 화신’이 끝난 후에도 유쾌한 잔상을 남긴 배우 중 하나다.
박성훈은 최근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긴 후에야 종영 소감을 꺼내 놓았다. “6월 중순부터 거의 만 다섯 달 정도 촬영을 했어요. 시작할 때는 24부작이기도 하고, 체감 기간이 꽤 길겠다 생각했죠”라며 미소를 지은 그는 “드라마 종방연에 많이 참석해 본 건 아니지만, 서로 환호성을 지르며 마지막 방송을 함께 시청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시간인 것 같습니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질투의 화신’에서 그가 연기한 차비서는 전사(前史)가 많이 드러나지는 않은 인물이다. 이에 대해 박성훈은 “원래 차비서는 엘리트고, 무술에도 능한 인물이에요. 촬영 초반 대본을 봤을 때 허당미를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보였죠”라고 설명했다.일반적인 기업 대표와 비서의 관계와는 다르게, 가끔은 비서의 권한을 넘어서기도 하는 대목들이 드라마에 따뜻한 웃음을 불어넣었다. 이를 위해 박성훈은 PD와 부단히도 상의를 했다고.
다소 아쉬웠던 것은 차비서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박성훈은 “‘질투의 화신’에 이름 없는 역할이 세 개 있어요. 오간호사, 차비서, 박기자. 그런데 오간호사 명찰을 보니까 오진주라고 돼 있더라고요”라고 장난스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차비서도 차성훈이지 않겠냐는 기자의 말에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박성훈의 답변이 웃음을 줬다.
24시간 고정원을 따라다니다 보니 시청자들은 차비서에게 ‘극한직업’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박성훈은 제작진 사이에서도 이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전했다. 그는 “촬영감독님들과 ‘도대체 얘는 연봉을 얼마나 받아야 해?’라고 농담을 하곤 했어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 많이 받지 않을까, 로 결론을 내렸죠”라고 말했다.
함께 촬영한 분량이 가장 많은 고경표는 실제로 박성훈보다 5살이 어리지만, 드라마 속 나이가 역전된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친하게 지냈다고. 박성훈은 “경표가 그렇게까지 어려 보이지는 않아서…”라고 너스레를 떤 후 “경표가 꽤 동생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 ‘괜찮다면 반말을 해라’라고 했죠. 그런데 경표가 예의가 워낙 발라서 끝까지 존대말을 하더라고요”라고 촬영 현장을 떠올렸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박성훈과 고경표는 역할상 내내 수트 차림을 해야만 했다. 고경표는 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다면, 박성훈은 얼굴에 땀이 많은 탓에 메이크업 수정에 애를 먹었다고. 그는 “저보다는 제작진이 고생을 하셨다”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운전은 그가 촬영장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이었다. ‘비서 겸 경호원 겸 기사’라는 역할 설명 답게 운전을 하는 장면이 꽤 많았는데, 제작진이 요구하는 정확한 위치에 차를 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는 “제 자가용은 작은데, 드라마에서는 세단 중에서도 큰 차를 몰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를 움직여야 하는데 헷갈리더라고요. 운전을 못 하는 편은 아닌데… 사실 살짝 한 번 긁은 적도 있어요”라고 고백했다.
공연계에서는 이미 실력을 입증받은 박성훈이지만, TV라는 매체 환경에는 이제 막 뛰어 든 것도 사실. 드라마 말고도 예능 등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에 그는 “요즘 출연하고 싶은 예능이 생겼어요”라며 눈을 빛냈다. 원체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박성훈은 tvN ‘수요미식회’에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맛집 몇 군데를 추천하기도 했다.
“‘수요미식회’, ‘백종원의 3대천왕’, ‘맛있는 녀석들’… 음식 예능은 엄청 챙겨 봐요. 방송에 나왔던 곳에 찾아가기도 하고. 미식가로 소문난 신동엽 선배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어떤 집이 진짜 맛집인지 감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연기 인생의 새로운 도전들을 해 나가고 있는 그의 롤모델은 배우 나문희였다. 박성훈은 나문희가 출연해 호평받았던 tvN ‘디어 마이 프렌즈’를 언급하며 “단 한 컷도 거짓이 없으시고, 서민들의 애환부터 할머니들의 한까지 모든 정서를 다 담아내시잖아요. 부러 기술을 쓰지 않으시더라도 표정 하나 만으로도 울컥하게 만드시고요. 드라마 보면서 그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없는데, 눈물 닦은 휴지가 테이블에 그득할 정도였어요”라며 대선배를 향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명답이 나왔다. 그는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며 진지한 얼굴을 했다. “지금 생각했는데 좀 멋있네요”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판타지도 좋지만 보는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고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를 남기기 싫어 SNS도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재치있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금세 밝게 만들 줄 아는 배우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수요미식회’에 출연하는 것”이라며 능청스럽게 웃다가도 “큰 역할, 좋은 역할도 욕심나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익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배우 박성훈의 다작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bestsurplu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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