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전국에서 촛불이 켜지고 있는 요즘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꺼지기는커녕 보란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퇴진운동이 뜨겁게 일고 있는 가운데, 측근들의 각종 혐의에 대한 진실 규명 목소리도 격하게 울리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더 기가막힌 정국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건 마치 이런 정치판을 예상이라도 한듯 부패한 현실을 스크린과 TV에 담은 문화 콘텐츠가 많다는 점이다. 더러운 정치판을 꼬집고 비열한 캐릭터를 앞세워 숨겨진 진실을 풍자한 작품들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16년 오늘을 미리 보고 온 듯이 말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을 동경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모를 수가 없을 화끈한 '문제작들'이다.
◆"민중은 개돼지?"…'내부자들'
"최순실 게이트를 보니 '내부자들'은 현실 미화 영화였네요" 한 누리꾼의 웃지못한 평이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주연의 영화 '내부자들'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들을 돕는 정치깡패와 뒷거래 판을 짜는 논설주간, 그 사이 비자금 스캔들과 이를 캐려는 무족보 검사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해 11월에 개봉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본편과 감독판을 합쳐 9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정치판, 언론계, 재벌들의 더럽고 비열한 비리와 유착을 다루는 내용이 어쩐지 요즘의 씁쓸한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특히 극중 보수언론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지죠"라는 대사를 치는데 현실 속 교육부 고위공무원인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앞서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해 공분을 샀던 바다.
◆정유라에 차움까지…'밀회'
최근 가장 '핫'하게 재조명 된 작품은 JTBC 드라마 '밀회'다. 지난 2014년 전파를 탄 '밀회'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 분)과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 분)의 음악적 교감과 금지된 사랑을 담은 멜로 드라마다. 하지만 예술계를 중심으로 기득권층의 비리를 비꼬았는데 마치 최순실 게이트를 예언하듯 여러 장치들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화여대 특혜입학으로 물의를 빚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밀회'에서도 입시 비리의 주인공 이름이 정유라(진보라 분)다. 딸을 부정 입학시키고 학점을 조작하는 정유라의 엄마는 무속인이고 정유라의 다음 번호 수험생은 최태민이다. 영생교의 교주인 최태민과 그의 딸인 최순실 씨를 염두에 둔 것 같은 기막힌 설정이다. 특히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해 차움 병원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데 '밀회'에 배경 장면으로 종종 비춘 곳이다.
◆"박근혜와 최태민"…'제4공화국'
1995년 말부터 1996년 초까지 MBC에서 방영됐던 '제4공화국'에는 영애 시절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가 담겨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나누는 대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우려가 가득 느껴진다. 김재규 역의 박근형이 "큰 영애 문제입니다"라고 말문을 꺼내자 박정희 대통령으로 분한 이창환이 "그, 최 머시기인가 하는 그 목사 얘기요?"라고 답한다.
특히 박근형은 "구국여성봉사단이라고 하는 건 허울뿐이고 (최태민이) 업체에서 찬조금 챙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여자 문제까지"라며 문제점을 꼬집어 눈길을 끈다. 20여 년 전 영상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다시 각광받게 됐고 유튜브 사이트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comet568@osen.co.kr
[사진] 영화 '내부자들', 드라마 '밀회', 드라마 '제4공화국'. /영화 스틸,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