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하준은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극본 최완규, 연출 이병훈 최정규)에 중간 투입돼 큰 활약을 펼쳤다. 그가 연기한 명종은 세상 물정을 모르다 옥녀(진세연 분)를 만나면서 백성의 삶에 눈을 뜨고, 바르게 조선을 이끌어나가는 역이었다. 배우 인생 최초로 도전한 사극에 왕 역에 사극의 거장 이병훈 감독의 작품이라니, 그에겐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특히 옥녀 역을 맡은 진세연과 산뜻하고 또 애틋한 남매 호흡이 후반부를 구성한 극의 재미 중 하나였다. 올림픽으로 인해 1회 연장돼 무려 51부를 끌어온 진세연을 옆에서 바라본 소감에 대해서는 ‘영광’, ‘존경’이라는 단어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배우였던 지세연의 노력과 공을 높이 샀다.
서하준에게 ‘옥중화’는 또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될 것이다. 앞서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 공주’를 통해 ‘설설희’라는 이름과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희대의 대사로 기억됐던 그. 이제는 ‘옥중화’ 명종으로 불리며 보다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시킨 계기다.
다음은 서하준과 나눈 일문일답.
-드라마를 종영한 소감이 어떠한가.
▲아쉽고, 짧은 시간동안 많은 걸 많이 얻고 배웠던 작품인 것 같다. 연기적인 것도 그렇고 몰랐던 지식, 놓치고 간 부분도 상기시켜줬던 작품이다.
-첫 사극이지 않았나. 그것도 이병훈 감독의 작품이라 남달랐을 것 같은데.
▲중간 투입을 결정하고 드라마를 찍기 3일 전에 급박하게 임했다. 배우가 한 삶을 살면서 왕 역할을 한 번쯤 맡을지 모르는데 왕 역할을 제가 맡았다는 게, 또 이병훈 감독님 작품을 맡는다는 게 감회가 색다르고 무게감도 갖고 있었다. 다짐을 그렇게 하고 갔는데도 잘 했는지 모르겠다.
-명종이 옥녀를 후궁으로 들이려고 하면서, 이복 남매의 사랑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명종은 정말 이성 간의 사랑이었나.
▲그게 저도 참 궁금했다. 같은 피에 이끌림에 대한 감정의 호기심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이성간의 호감에서 생긴 사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끌림이라는 점은 맞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은 똑같지 않나. 일단 옥녀 입장에서 봤을 땐 초반 명종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어리숙하고 세상물정 모르고 한 없이 부족하고 철부지 같은 인물이지 않나. 정체가 왕이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 작품에 임할 때 두 가지 차이를 입체적으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진세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호흡을 나눈 걸 진짜 영광으로 생각한다. 다 하나 같이 입 모아 말한다. 진세연이라는 배우를 나이가 어리지만 존경한다고. 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반성하게 하고 제가 잊고 왔던 걸 다시 상기시킨 배우다. 정말 성실하고 인성 바르고 그런 강행군 속에서도 인상 한 번 안 찌푸리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런 스케줄에서는 대사를 외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어려운 대사도 굉장히 많다. 그 대사를 인지하고 숙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명종과 옥녀의 러브라인이 잘 붙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특별히 케미스트리를 높이기 위해 중점을 두고 연기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명종이라는 인물이 철부지 같은 모습이 발휘될 때 여자분들이 모성애를 느끼셨나보다. 그래서 옥녀가 그 철부지를 감싸 안고 챙겨준다는 것이 친근하고 가볍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애증의 모자 관계이지만, 김미숙과의 호흡이 너무나도 좋았다.
▲어머니에게 많이 배웠다. 놓치고 간 부분도 어머니가 챙겨주셨고 생각지 못한 부분도 어머니께서 많이 끄집어내주셨고,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다.
-특히 막판에 주상을 붙잡고 오열하는 김미숙의 연기를 보며 본인도 울컥하지 않았나.
▲어머니와 제일 많이 맞춰본 신이다. 슛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와 저만 단둘이 리허설을 여섯 번이나 준비했다. 감정이 더 올라오면서 생각하지 못한 그런 신이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촬영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모든 촬영이 재밌었는데, 옥녀가 암행어사인 줄 아는 저를 붙잡고 도망가는 신이었다. 그 신이 되게 기억에 남는다. 비가 오고 있었고, 이병훈 감독님이 야외에 못 나오시는데 저 때문에 나와주셨다. 진세연 씨가 제 손을 잡고 뛰는데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여자 손에 이끌려서 달려가는데 여자가 더 빠르고 제가 뒤에 부족한 느낌을 가지고 뛰어가는 게 인간 서하준으로서 굉장히 어색했다.
-사실 서하준 씨 하면 ‘오로라공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당시 암세포 대사도 화제가 됐는데, 그런 얘기들을 이제 떼어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나.
▲그런 마음도 있지만 어느 정도 해방도 된 것 같다. ‘오로라 공주’보다 ‘옥중화’로 기억해주시는 분도 많이 생긴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중장년층의 아이돌이 됐다. 인지도를 젊은 층까지 넓히고 싶은 그런 고민이 들 것도 같은데.
▲어느 정도 없다고는 거짓말인 것 같다. 이제는 젊은 친구들도 알아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조금 드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연기자에게 한 역할의 이름으로서, 또 그 역할의 직업으로서 기억되는 건 영광스럽고 좋은 거다. 임금으로 기억되고 ‘설설희’로 기억되고 모두 다 영광스럽다. 그런데 여기에 내 이름 석자를 알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 besodam@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