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지원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만 들으면, 왠지 모르게 날카롭고 예민할 것 같지만 실제로 만나 얘기 나눠보면 정반대다. 마르고 작은 체구이지만 몸집보다 몇 배나 더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가 있었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23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지원을 만났다.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띄며 취재진을 반겨줬다. 인터뷰를 위해 앉아 있는 기자들의 사진을 찍으며 “맨날 나만 찍혔으니 나도 찍겠다”며 인증샷을 남겼다. 영화 홍보를 위해 만난 자리지만, 엄지원과의 만남은 그런 격식 없이 편안했고 즐거웠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미씽 : 사라진 여자’(감독 이언희)는 이혼 후 어린 딸을 혼자 키우는 여자에게서 아이를 납치해간 보모와의 진실을 그리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엄지원은 이번 영화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워킹맘 지선을 연기한다. 공효진이 보모 한매 역을 맡았다.
“언론시사도회, VIP시사회도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뭐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리둥절하다. 일단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좋았고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었다. 덮으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이 영화는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업영화지만 이야기가 쉽게 표현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충무로 흥행 공식에 정면 돌파하고 싶었다.”
흥행을 기대하냐는 질문에 “기대가 있으면 실망이 있을 것 같다.(웃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하나 끝났다는 느낌이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다. 그냥 잘 기다려보고 싶다. 개봉 후에 알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영화는 남자 배우 중심이 아닌, 두 명의 여자 배우 엄지원과 공효진이 이끌어나간다. 한마디로 ‘워맨스(woman+romance)’ 영화인 것. 올 초부터 ‘검사외전’ ‘부산행’ ‘형’ 등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감동을 그린 영화가 많아 워맨스 영화가 잘 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이에 엄지원은 “(브로맨스는)너무 많이 봤지 않나. 지겹지 않아요?”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젠 새로워질 때다. 새로운 것을 해볼 때도 됐다. 남자들의 케미(스트리)만이 아닌 여자들의 워맨스가 더 좋다”고 자신했다. 평소 친한 동생인 공효진과 인물의 감정에 대해 깊게 대화 나누며 연기했다고.
“막상 붙는 씬은 거의 없었는데, (숙소에서 만나면)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할지 서로 얘기했다. 아주 많은 대화를 했다. 어떻게 보면 배우들이 서로의 연기 레벨에 대해 얘기하는 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저희는 그런 부분까지 다 얘기했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얘기하며 작업했다. 가장 많이 대화한 배우가 아닐까싶다.(웃음)”
지난 2002년 MBC 드라마 ‘황금마차’로 데뷔한 엄지원. 햇수로 치면 올해 15년차 배우다. 그동안 밝고 수다스러운 노처녀부터 엄마, 판사, 동시통역사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에 엄지원은 “저는 저를 흥미롭게 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다. 했던 것들이나 비슷한 것들은 보지 않는다”며 “그러다보니 ‘경성학교’ ‘소원’ 같은 작품을 선택했던 것 같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미씽’을 선택한 것 같다”고 작품 선택 기준을 밝혔다.
무엇보다 엄지원은 “하루 빨리 시국이 안정되길 바란다. 국민들이 기쁘게 극장에 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purplish@osen.co.kr
[사진] 딜라이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