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청룡영화상은 올 한 해 고생한 영화인들의 축제이자, 사랑해준 관객에 대한 보답, 절망에 빠져 있는 국민에 대한 위로였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힘 있는 말과 잠시나마 웃게 해주는 말이 있어 더욱 빛났던 순간. 청룡을 웃고 울린 말말말을 살펴보자.
지난 25일 오후 7시 55분부터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는 제37회 청룡영화상이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팬들이 레드카펫 현장을 찾아 배우들을 응원했고, 배우들 역시 직접 만나는 팬들을 보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영화인들의 말들이 현장에 있는 관객은 물론,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는 시청자들까지 감동케 했다.
#박정민 “송몽규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게 연기하겠습니다”
이날 신인남우상의 트로피는 ‘동주’에서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을 연기한 박정민에게 돌아갔다. 그는 “70년 전 나라의 주권을 되찾아주시기 위해서 남모르게 피 흘리며 싸워주신 수많은 이름이 계십니다”라며 나라가 많이 어수선한데 대한민국 국민이자 배우로서 송몽규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게 연기하겠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한 바. 트로피의 무게를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 라미란 “격정멜로..30대 남배우들 많은 응모 부탁드려요”
라미란은 ‘히말라야’를 함께 한 윤제균 감독과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더 예뻐질 테니까 격정멜로 준비해주세요”라며 윤감독에게 요청했다. 이어 “아예 이 자리에서 계약서를 써요. 제가 20대 후반 남배우 거론했더니 철장행 될 것 같다고 하셔서 30대 초반 남자배우로 리스트 작성하고 있으니 많은 응모 부탁드립니다”라고 알려 웃음을 자아냈다.
#정우성·손예진 “주연상 후보 올랐는데 인기상 주시네요?”
정우성과 손예진은 배두나, 쿠니무라 준과 함께 청정원 인기스타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두 사람 모두 각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상황.
이와 관련해 손예진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서 긴장하고 왔는데 인기상을 주시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를 그대로 받아 정우성 역시 “제가 사실 남우주연상 후보로 왔다 인기상을 주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재치 있게 소감을 밝혔다.
#. 곽도원 “(김혜수) 누나 좀 받아주세요”
곽도원은 쿠니무라 준과 함께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는데, 제대로 흥을 분출하며 ‘곽블리’다운 면모를 뽐냈다. 그는 “할 게 여섯 일곱 페이지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대본을) 넘기겠습니다. 말 많이 해봤자 더듬거리기만 하고 (김혜수) 누나 좀 받아주세요”라고 김혜수에게 구원을 요청해 웃음을 자아냈다.
#쿠나무라 준 “송강호 씨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곡성’에서 살벌한 외지인을 연기한 쿠니무라 준은 남우조연상을 받고 한국어로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평소 팬이라고 밝힌 송강호를 바라봤고 “이전부터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씨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신 스틸러 박찬욱 가방 “감독님, 가방 안에 뭐 들었어요?”
2부 오프닝 코너을 맡은 이특은 청룡영화상 비하인드 사진을 공개했다. 이중 박찬욱이 라미란과 재회한 상황을 담은 사진에서 그의 가방을 꼭 안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특은 “감독님, 가방 안에 뭐 들었어요?”라며 궁금해 했고, 박찬욱은 중요한 것이 들었다면 O(오)자 표시를 해 달라는 요청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에 김혜수는 “가방에 대한 의문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오달수 “난 날지 못하는 일억 요정”
오달수와 이동휘는 남우조연상을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이동휘는 “천만요정 오달수 선배님과 시상하게 돼서 천만다행인 이동휘입니다. 이제 일억요정으로 업그레이드 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에 오달수는 “난 날지 못하는 요정”이라며 쑥스러워했지만, 이동휘의 제안으로 관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대리시상’ 이선균 “아내 전혜진 입원, 다 제 탓이다”
이선균은 아내 전혜진을 대신해 대리시상하러 무대에 올랐다. 그는 “아내가 갑자기 몸이 안 좋은 관계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라며 “혜진 씨가 다 저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제가 이 사태를 책임지라고 해서 남편인 제가 책임지려고 부득이하게 참석했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미안하다. 잘할게. 저도 배우로서 당당하게 청룡에 초대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함께 시상하러 나온 이성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정석 “‘형’ 500만 넘으면 도경수와 내년 청룡영화상 축하무대할 것”
조정석은 박신혜와 감독상을 시상하기 전 ‘형’ 500만 관객 공약을 밝혔다. 그는 “내년 38회 청룡영화상에서 두 분의 무대를 특별 무대로 보고 싶은데 기대해도 될까요?”라는 박신혜의 요청에 “‘형’이 500만이 넘으면 저와 도경수 씨가 축하무대를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고 답했다.
#나홍진 감독 “환희야, 네가 ‘곡성’을 살렸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으로 감독상을 수상하고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 등 함께 해준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특히 효진 역으로 열연을 펼친 김환희에게 “환희야,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네가 곡성을 살렸다. 너무 고마워”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병헌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겼네요”
이병헌은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함께 ‘내부자들’에 출연한 백윤식, 조승우와 스태프를 비롯해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의 손석우 대표, 아내 이민정과 가족들에게 차례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그의 수상소감이 관객들에게 감명 깊게 남은 까닭은 현시국에 대해 언급하며 국민을 위로했기 때문.
이병헌은 “‘내부자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약간 과장된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것 같은 그런 상황이란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소신발언 이런 건 아니고요. 티비를 통해 모두가 한 마음이 돼서 아주 절망적인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 걸 봤는데 전 아이러니하게 그 장면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것이 희망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25년 준비했던 많은 소감들을 앞으로 청룡에서 조금씩 소감을 쓸 수 있도록 계속 열심히 해서 이 무대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 besodam@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SBS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