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김은숙 극본, 이응복 PD)는 그야말로 기존 드라마의 수준을 수단계 끌어올릴 선구자며 영화계에 경각심을 일깨울 진짜 도깨비다.
935년 전 무장 김신(공유)은 매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만 간신의 이간질에 판단력을 상실한 어린 왕의 시샘이 조작한 역모죄로 가족과 함께 몰살된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은 그를 도깨비로 살려내 영생을 선사한다.
신이 이 지난한 영속성을 끝내고 영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부를 만나 가슴에 꽂힌 한 맺힌 검을 뽑아내는 것뿐. 그는 그렇게 현대에 이르는 동안 세계를 떠돌며 부를 축적하는 한편 조선의 귀금속상인 유 씨를 도와 그 집안을 재벌로 키우고 그들로 하여금 대를 이어 자신을 떠받들도록 해 서울에 안착한다.
고아인 여고 3년생 지은탁(김고은)은 못된 이모 집에서 악랄한 이모와 사촌들의 구박과 혹사 속에 희망 없이 얹혀사는 불행한 청춘이다.
우연히 촛불을 끄자 나타난 신이 도깨비임을 알고는 자신이 도깨비 신부가 되겠다고 고백한다. 도저히 가망이 없던 내일에서 유일한 희망을 본 것이다. 어쩌면 이 죽음보다 더 지독한 삶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승사자(이동욱)는 죽었다가 눈을 떠보니 지금의 신분을 갖게 됐다는 것만 알 뿐 과거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을 상실한 그가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에게 기억상실차를 마시게 한 뒤 저승에 데려가는 임무에 매진한다는 설정이 심상치 않다.
그는 그동안 영혼들의 노잣돈을 모은 거금으로 유 씨 가문의 상속자인 유덕화(육성재)의 집에 전세로 입주하는데 그곳엔 이미 일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신이 살고 있다. 두 귀신의 어쩔 수 없는 동거가 시작된다.
저승사자의 가장 큰 숙원은 19년 전과 10년 전에 진작 데려갔어야 할 은탁을 기필코 찾아내 처리하는 것. 그런데 기껏 찾고 보니 신의 곁에 바짝 붙어있다. 신과 저승사자는 친한 듯, 원수인 듯 그렇게 티격태격 아웅다웅하며 살아간다.
1회엔 웬만한 액션서사극 못지않은 스케일과 액션이 펼쳐졌다. 묵직한 검을 휘두르는 신의 활약과 전장의 긴박감과 비장미는 도깨비로 환생한 신이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에서 악당들을 응징하는 장면으로 연결됐다.
악당들이 배를 가볍게 하겠다며 쓸모없는 짐을 바다에 던지는 과정에서 한 소년까지 무참하게 내던지자 신이 “인간이 짐승보다 못하면 어떻게 되는 줄 하느냐? 분노한 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거친 파도를 일으킨 뒤 장검으로 배를 조각내는 장관이 연출됐다.
신과 저승사자는 신이다. 하지만 수많은 국가와 역사를 유지하게 만든 근원인 종교들이 떠받드는 거창한 신과는 좀 다르다. 둘은 원래 사람이었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은 물론 애니미즘까지 포용한 냄새가 짙다.
더 나아가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발표된 유력 판타지 영화의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빌려와 버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버라이어티하다.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의 ‘하이랜더’는 450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불사신이 주인공이다.
신처럼 검을 휘두르는 이 불사신들은 여러 명이지만 오직 한 명이어야만 영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다른 불사신을 찾아내 그의 목을 쳐 죽인 뒤 기를 빨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가졌다.
‘별에서 온 그대’에게 모티프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큰 ‘맨 프롬 어스’도 있다. 10년간 미국의 지방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한 존 올드먼은 종신교수직도 거부한 채 돌연 짐을 싼다. 동료 교수들이 마련한 환송연에서 그는 자신이 1만 4000년간 살아온 예수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 증거로 자신이 소장한 미술품들이 해당 작가들로부터 직접 받은 진품이라고 주장한다.
신은 은탁의 19살 생일선물로 메밀꽃을 주며 꽃말이 연인이라고 말한다. 중국 감독 장이머우(장예모)는 3000년 전 진시황에게 밉보여 병마용에 묻힌 한 장군이 그때 못 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현대에 환생한다는 영화 ‘진용’(1989)에서 장군 역을 맡아 시공간을 뛰어넘은 애절한 사랑얘기를 펼친 뒤 아예 ‘연인’(2004)이란 영화도 만들었다.
이젠 흔한 ‘식스 센스’류의 귀신을 보는 능력은 필수다. 그 초능력을 지닌 은탁을 두 번째 만난 신이 “넌 뭐냐? 다른 사람은 미래가 보이는데 너는 스무 살 서른 살도 안 보인다”고 의아해하자 은탁은 “미래 같은 건 없다”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현실적인 정문일침인가? 정작 미래가 없는 이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죽으려면 누군지도 모를 신부를 찾아야 하는 신인데 생몰이 확연한 은탁이 미래 같은 건 없다고 단언한다. 사는 게 진짜 괴로운 장본인은 죽을 줄 알면서도 짧은 삶마저도 지긋지긋한 은탁이었다.
죽고 싶은 신과 살고 싶은 은탁이 각자의 극단적인 불행에서 고통을 느끼지만 사실 그들은 그 아픔으로 인한 비명마저 지를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숨 쉬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슴 한구석에 침윤된 희망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자 정제된 의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결론인 사랑이다.
‘하이랜더’나 ‘맨 프롬 어스’의 주인공들은 매 시대 풍족한 로맨스를 즐기며 살았지만 신은 935년 전 가족을 잃은 뒤로 수절한 채 ‘도깨비신부’만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그건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도 마찬가지였다.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으로 완성된 스토아철학의 무게중심은 윤리학이다. ‘자연을 따른다’는 건 곧 ‘신의 뜻(이성)을 따른다’는 의미로서 이성은 정념(감정 충동)에 방해받지 않는 금욕과 평정(아파테이아) 그리고 현자로 연결된다.
신과 은탁, 저승사자와 써니(유인나)가 그렇다. 신이 ‘온리 신부’이듯 이제 19살의 세상물정도 제대로 모르고 아직 남자친구 한 번 못 사귀어본 은탁은 다짜고짜 도깨비신부가 되겠다고 한다. 이성을 따르되 직관을 믿는 신념이다.
저승사자는 ‘트랜스포터’의 프랭크(제이슨 스타뎀)다. 옷차림에 과하게 신경을 쓰고, 건강식에 집착하던 까칠한 ‘깔끔남’이었던 그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써니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는 게 똑같다. 써니 역시 저승사자를 만만하게 봤지만 이내 그의 슬픈 눈에 운명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히트맨’의 구조와도 엇비슷하다.
신과 저승사자, 신과 덕화의 ‘남-남’ 에피소드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이 장군이었을 때 적장의 목을 베자 카메라가 적장의 시선이 돼 하늘로 올랐다 땅에 떨어져 신을 바라보는 오블리크앵글로 처리되는 등의 연출은 말할 것도 없이 탈안방극장적 세련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도깨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