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일 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를 그냥 영화로만 볼 순 없을 것 같다.
올 연말 극장가 흥행을 독주하고 있는 '마스터'가 그렇다. ‘마스터’는 개봉 9일째인 29일 오후 누적 관객수 400만을 돌파했다. 개봉 3일째 100만, 4일째 200만, 5일째 300만 관객을 넘었다. 이쯤되면 흥행 광풍이다. 12월 개봉 영화들 가운데 최단 기간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변호인’ ‘국제시장’보다 빠르고, ‘베테랑’과 같은 흥행 속도다.
'마스터'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현실이고 현실 같은 영화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개봉한 영화 ‘판도라’ ‘아수라’ ‘내부자들’ ‘카트’ 등도 이에 해당된다. 현실에서 충분히 접해왔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혹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소재를 사용해 대중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화려한 언변과 사람을 현혹하는 재능으로 수만 명 회원들에게 사기를 친 다단계 네트워크 회사 진현필(이병헌 분)을 추적하는 경찰 김재명(강동원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진 회장이 작성한 로비 장부는 엘시티 이영복 회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강타한 원전 사고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다. 최근 발생한 경주 지진과 맞물린다. 영화를 본 정치인들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을 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생각이 구호에서만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권력과 돈을 거머쥔 시장, 검찰, 경찰이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아수라’ 역시 타인을 가차 없이 짓밟는 현실 세계를 연상케 한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드라마 ‘내부자들’은 뿌리 박혀 있는 부패와 비리, 그런 것들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시스템을 주목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카트’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노동 현실의 문제를 끌어안았다. 영화 속 가상 세계나 현실의 황당함이 비등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완전히 알게 됐다.
지난 가을부터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AI(조류인플루엔자)확산 등 우울한 소식만 들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가뜩이나 마음이 편치 않은데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영화와 현실은 공생관계다. 영화 같은 현실이 있는가 하면, 현실 같은 영화도 있다. 현실에서 읽어내지 못한 진실을 영화를 통해 비춘다. 지금 언급한 작품보다 훨씬 많겠지만 모두 5편의 영화를 통해 이 시대의 부패한 정치와 권력, 자본주의가 파괴한 인간의 비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영화로만 본다면 우리는 세상의 이면에 담긴 수많은 의도와 진실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최순실’을 주제로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purplish@osen.co.kr
[사진] 각 영화 포스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