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MBC ‘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이하 ‘은위’)는 부동의 1위 ‘해피선데이-1박2일’(‘1박2일’)의 시청률을 어떻게든 갉아먹어야 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이하 ‘런닝맨’)을 어떻게든 멀리 떨쳐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힘든 여건은 여러 가지다. 1990년대 MBC가 예능왕국일 때 전성기의 이경규를 앞세워 성공한 ‘몰래카메라’를 리바이벌했다는 건 분명히 핸디캡이다. 이미 유럽에선 예능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성공사례임에도 그런 집착에서 못 벗어나 2005년부터 2년간 재탕한 적도 있기에 이미 진액이 다 빠진 쇠뼈 같은 소재다.
‘1박2’일은 요지부동의 인기를 자랑하고, ‘런닝맨’은 해외 판매실적이 좋은 데다 내달 폐지를 예고했기에 멤버들의 마지막 투혼과 마니아들의 아쉬움에서 발흥한 맹목적인 지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여러모로 힘든 싸움이다. 그러나 7%대의 시청률로 ‘런닝맨’을 1%포인트 정도의 차이로 앞서며 선전 중이다. 어떤 비결일까?
지난 8일의 ‘희생자’는 산다라박과 이훈이었다. 천둥은 누나 산다라박에 대한 ‘몰래 카메라’를 의뢰했다. 가족 사랑의 재확인이었다.
천둥은 산다라박을 고양이 카페로 초대해 자신이 고양이 영양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속이며, 누가 봐도 사기꾼인 조력자를 엄청나게 신뢰하는 동업자인 듯 소개했고, 결국 다른 피해자들이 들이닥쳐 자신도 사기를 당했음을 보여주는 연출에 앞장섰다.
피해자들이 천둥을 둘러싸고 협박하자 산다라박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들을 막아서며 보호했고, “우리도 사기 당한 것 같다”며 동생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로 분장한 윤종신과 김희철이 등장하자 비로소 진상을 파악한 그녀는 안도의 눈물을 쏟아내며, 끈끈한 오누이의 우애를 보여줘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그녀는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 했을 때도 울지 않아 사장님한테 야단맞았는데”라며 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어느 정도 큰지 보여줬다.
‘한판승’의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는 남달리 유도사랑에 푹 빠진 이훈의 몰래카메라를 의뢰해 그의 유도에 대한 사랑이 방송용인지 진심인지 시험했다.
가짜 유도인의 송년회 행사에 외부인사로 초대된 이훈은 많은 유도인(?)들에게 상영된 자신의 KBS2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의 유도경기 승리 영상을 보며 쑥스러워하다가 이내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무릎수술로 재활 중임에도 불구하고 명예승단 심사에 흔쾌히 나서 밭다리로 10명의 ‘덩치’들을 넘어뜨린 뒤 명예5단 등극에 감격스러워했다. 유도계의 관행이라며 전원이 윗옷을 벗어던지자 마지못해 이에 동참한 뒤 이원희가 뿌리는 얼음물 세례마저 기꺼이 받아낸 그는 이수근과 이국주의 등장에 상황을 파악하고, “이원희를 혼내주고 싶은데 힘이 달려 그럴 수도 없고”라며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나름대로 보람된 시간이었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중은 유명 연예인의 사기 혹은 폭행사건연루 보도를 종종 접하곤 한다. 최근에도 이태곤이 술자리 폭행사건으로 시시비비 중인 것을 보고 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이란 이유로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 유명세다.
폭행사건에서의 잘잘못의 판단은 정서를 배재한 채 오로지 매우 디테일한 법리적 해석 차원에서 내려지기에 유명인일수록 억울한 결과에 봉착할 가능성어 존재한다. 사기사건 역시 연예인이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몰릴 가능성도 높다. 심지어 제품의 완성도나 제대로 된 값어치도 모른 채 광고모델에 나섰다가 제작사와 뭉뚱그려 사기꾼으로 ‘땡 처리’될 여지도 크다.
그런 면에서 산다라박은 가족과 연예인으로서의 할 말을 다 했다. 만약 그 구성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천둥은 금전적 손해를 봤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면에서 자유롭기 힘들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천둥을 사기꾼과 동일선상에 놓고 볼 것이고, 둘이 동업자 관계인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산다라박은 단지 연예인이란 이유로 어떻게 도덕적으로 매장될 수 있고, 그래서 연예인으로서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더불어 대중에게 연예인의 애환이 어떤 건지 충분히 호소하는 큰일을 해낸 것이다.
그녀의 천둥을 향한 ‘무한사랑’과 이훈의 무식하리만치 우직한 우정과 유도사랑은 연예인이라고 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채 으스대거나 특별한 체하지는 않는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충분히 보여줬다.
두 사람의 ‘골탕 먹기’ 놀이가 시청자에게 주는 교훈과 감동의 근원지는 인간관계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개인의 인격에 자존심을 부여하고, 개성에 자존감을 앞세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동물과 달리 인간관계는 생존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그런 차원에서 산다라박은 구성체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족관계의 당위성과 중요성의 의의를 보여줬고, 이훈은 왜 연예인이면서도 유도인들(연예계를 넘어선 전체 사회)과도 충분히 소통하고 화합하며 이타적인 자세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로 인한 값어치를 입증해줬다.
어설픈 위정자일수록, 잔인한 독재자일수록 심복은 물론 국민을 시험하려 든다. 시험은 주체는 짜릿할지 몰라도 객체는 불쾌하다. 이 불건전한 확인사살의 취향은 객체의 감정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고, 육체적 쇠퇴를 유발할 수 있다.
단체를 대상으로 한 시험은 사람들의 개성을 억누르고, 획일화된 공상적 사회주의의 단점에 부응하는 반민주적 성질을 지녔다. 교복과 다름없다.
그러나 ‘은위’처럼 각자의 환경과 개성에 따라 달리하는 시험이라면, 개개인의 의식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개별적 리트머스 시험지라면, 그건 인간의 속물근성을 파헤치거나 아니면 숭고한 영혼을 발현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은위’가 별다른 자극도 없이, 억지스러운 웃음유발의 안간힘도 없이, 스타의 예능재능의 구현도 없이, 이토록 선전할 수 있는 이유는 MBC ‘무한도전’처럼 역사교육의 거창한 탐구는 없지만 인간 내면의 순수성에 호소하는 ‘생활의 발견’에 있는 것이다.
한물간 ‘몰래카메라’를 재탕한 ‘몰래카메라’에서 MC만 바꾼 ‘은위’는 제목마저도 김수현 주연의 히트영화에서 빌려왔다. 주인공을 속여 골탕을 먹인다는 기본 틀은 변함없지만 그 메시지가 사뭇 달라졌다.
까칠하고 변덕스러우며 배타적인 캐릭터로 굳어진 이경규가 리드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극적인 드라마는 없지만 인간의 본성과 연예인의 인간성에 포커스를 맞춘 ‘착한 기획’은 건전성과 불건전성의 차이점을 확연히 보여주는 성공사례다. 그건 ‘7012(7명은 하나이다)’를 외치며 7년에 가깝게 쌓아온 7명의 우정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런닝맨’ 멤버의 마지막 장렬한 산화마저도 넘어설 수 있는 인간미의 승리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MBC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