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 영화 '여교사'를 보고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낯설다'라는 것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낯섦도 있었지만 배우 김하늘에 대한 낯섦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김하늘이 아니었다. 기억 속 김하늘은 사랑스럽고 청순하고 가녀린 여자였지만 '여교사' 속 김하늘은 정반대였다. 어찌보면 무서우리만치 표독스럽고 무서우리만치 공허했다.
배우 본인도 낯설었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했었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하늘이 '여교사'를 선택한 건 욕심이 났기 때문이었다.
김하늘은 '미련'이라는 단어를 썼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난 후, 이 캐릭터를 연기해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태용 감독을 만났고 감독과 이야기를 하며 미련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변신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냥, 효주라는 인물을 그려내보고 싶었던 욕심이 김하늘을 움직이게 했다.
다음은 김하늘과의 일문일답.
-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대본을 읽으면서 정말 이건 내 영화가 아니고 내가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사실 재밌게 읽었지만 당연히 나한테 온 대본이니까 이입하면서 보지 않나. 연기라고 하더라도 효주 캐릭터의 감정, 느낌들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 기분이 나빠서 대본을 확 덮고 있는데 그럼에도 효주에 대한 여운, 끝감정에 대한 여운이 오래 남더라. 이 친구를 연기하지 않고 놓쳐버리면 미련이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매니저분한테 전화해서 바로 감독님부터 만나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감독님을 만나러 갔을 때도, 하기로 한 상황에서 만났음에도 마음의 준비가 안됐었다. 욕심이 나고 감독님도 궁금하고 대화도 나누고 싶어서 만났는데 막상 가서도 마음이 혼란스럽더라. 하지만 감독님을 만나고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 왜 효주라는 캐릭터에 미련이 남았을까.
▲ 이 친구가 연민이 갔다. '블라인드'때도 공감이 가고 안아주고 싶은 친구였다. 그 친구를 너무 잘 표현해주고 싶고 그래서 선택했던 것이었다. 이것 역시 보고 싶지 않고 외면해버리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내가 표현하는 이 친구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 까칠한 성격의 캐릭터는 원래 시나리오에 설정돼 있었던 건가.
▲ 내 선택이었다. 나중에 효주가 무너질때 더 애처로워보일거라고 생각했다. 감독님 인터뷰를 봤는데 마지막 편집 끝나고 효주가 더 안타깝고 짠했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썼던 대본보다 내가 표현한 효주가 훨씬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게 내가 본 효주였다. 이 친구는 가족도, 친구도 없지 않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 친구한테 긍정적인 친구가 옆에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싶었다. 저 친구한테 밝고 에너지 많은 친구들이 있으면 도움이 됐을까 생각했다. 아닐거 같더라. 성향 자체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날이 선 채 혼자 있는 여자이고 버틸 수 있는 것 하나는 정규직 선생, 여기에 희망을 가지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2편에 계속. / trio88@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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