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었다. 선글라스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독감에 걸렸다"고 말한 박완규는, 첫 단독 출연인 '불후의 명곡'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 못할까 걱정을 하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불혹을 훌쩍 넘긴 이 20년차 로커 박완규의 목청은, 독감도 막질 못했다.
지난 14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는 혜은이 편으로 꾸며져, 전설의 히트곡을 재해석하는 후배들의 무대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정동하, 화요비, 손승연, 레이지본, KCM, 박재정, 박완규의 순서였다.
'불후의 명곡' 첫출연인 박재정, 박완규를 제외하면 한 번씩 우승도 거머쥔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박완규가 활약했던 부활의 보컬 후배 정동하가 첫 포문을 열었고, 423점이라는 점수을 거머쥐며 '불후의 명곡' 첫 무대 최고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대기실의 박완규도 정동하의 고음에 칭찬을 보탰다.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득한 비트박스, 댄스, 레이저쇼까지 종합 선물세트로 쏟아낸 KCM이 나서기 전까지, '알앤비의 여왕' 화요비, '괴물 보컬' 손승연, '개성파 낭만밴드' 레이지본 등이 연달아 정동하의 고득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박재정도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지만, KCM을 넘진 못했다.
부활의 후배 정동하가 초반부를 선점했다면, 후반부는 부활의 선배 보컬 박완규가 마무리했다. 대기실에서 무대에 나서기 전, "편곡이 거의 안됐다. 뒷부분에 지르는 부분이 있긴 하다"고 설명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첫 무대에, 독감까지 달고 있는 박완규가 행여라도 1승을 못올려도, 우승을 못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확실한 기우였다.
'클래스가 달랐다.' 설명도 필요 없었고, 귀가 아닌 가슴을 울려대는 음색이 무대를 메웠다. 연륜은 장식이 아니었고, 로커라는 타이틀은 장르를 구분짓는 단순 글자의 배열이 아니었다. 이날의 감동의 무대는 아마 이렇게 기억될 것 같다. '독감도 못막은 박완규의 목청, 그리고 감성'이라고. / gato@osen.co.kr
[사진] '불후의 명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