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지금까지 검찰 내부를 총천연색으로 해부한 영화는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건국 이래 최대의 정치 스캔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검찰이 바로 서야 사회정의가 실현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만큼 검찰은 공무원 중 가장 정직하고 공정하며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 폭로 전 개봉된 영화 ‘내부자들’의 ‘예언’에 많은 국민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마스터’까지 가세하자 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검찰개혁을 목청껏 외쳤는지 비로소 뼛속까지 이해하는 분위기다. ‘더 킹’(한재림 감독, NEW 배급)은 조기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 과도기의 방점을 찍는, 당분간 나오기 힘든 수작이다.
때는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전남 목포 고교생 ‘짱’ 박태수(조인성)는 건달인 아버지가 연약한 검사에게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진정한 힘은 주먹이 아니라 권력에 있는 것을 깨닫고 책을 파고들어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해 지방검찰청 검사가 된다.
그러자 곧바로 맞선이 들어오고 방송국 아나운서인 부잣집 딸 한상희(김아중)를 만나 결혼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태수는 한 지역유지의 아들인 여고 체육교사가 제자를 성폭행하고도 달랑 500만 원의 합의금만 내고 풀려난 사건을 보고 재수사에 착수, 피의자를 다시 구속한다. 그런 그에게 대학 2년 선배인 서울 전략부의 양동철(배성우)이 찾아온다.
동철은 전략부장 한강식(정우성)이 피의자의 아버지와 절친한 관계니 사건을 덮자고 회유한다. 자신의 근무환경과 확연히 다른 전략부의 스케일과 부원들의 여유로운 생활에 현혹된 태수는 동철을 따라 서울에 입성, 강식이 주최한 비밀 호화파티에 참석해 충성을 맹세하고 거기서 학창시절 ‘짱’을 다퉜던 죽마고우 최두일(류준열)을 만난다.
강식은 검사계의 스타다. 노태우 정권 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서 목포의 최대 폭력조직을 제거함으로써 라이벌 조직 들개파를 이끌던 김응수(김의성)에게 목포를 안겨준 뒤 교묘하게 그를 이용하는 가운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들개파의 2인자인 두일은 자신의 보스가 강식에게 그러했듯 자신도 태수의 뒤를 봐주겠다고 약속한다.
강식 동철 태수는 승승장구한다. 기획수사와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활약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기까지 절대적 권력을 누리는 가운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왕을 꿈꾼다. 그러나 15대 대선 때 김대중 캠프를 지원한 것과 달리 16대 대선 때 이회창 캠프를 지원했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큰 위기에 봉착한다.
그 사이 안희연(김소진) 감찰반 검사는 강식을 잡기 위해 태수의 목을 옥죄어온다. 그러자 강식은 태수를 시골구석의 한직으로 몰아낸 것도 모자라 ‘옷을 벗어라’며 그의 아버지를 사기죄 등으로 구속한다. 토사구팽이다.
강식은 서울 강남에서 세력을 키운 두일도 잡아넣고 응수에게 지시해 그의 조직을 와해시킨다. 출소한 두일은 태수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뒤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는 ‘친구’ ‘신세계’ ‘내부자들’까지 모두 합쳐도 뭔가 허전할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버라이어티를 자랑하면서도 줄곧 검찰내부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감독의 탁월한 시나리오 및 연출능력이다.
얼떨결에 운동권으로 낙인찍힌 전력에 전라도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태수는 천연덕스럽게 서울말투를 구사하며 “고향은 서울”이라고 우겨댄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가족은 연금 6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티지만 친일파 부역자들은 장, 차관을 해먹었고 그 가족들은 재벌이 됐다’는 게 ‘떡검’이 되라는 강식의 설득이다.
전략부가 쌓아놓은 엄청난 자료는 ‘터지면 이 나라가 들썩들썩할 사건’들로 검찰의 야바위 기획수사 표적수사 의혹에 정면도전한다. 강식은 자신이 역사고 곧 나라라며 “요즘 애들은 왜 역사공부를 안 해? 역사 앞에서 인상 쓰지 말고 웃자”며 왜곡의 정치역사와 질곡의 서민역사를 정당화한다.
동철은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며 지금까지 제기돼온 비뚤어진 관행과 여론조작 의혹을 까발리고, 태수는 “내가 조직폭력배가 된 듯하다”며 두일과 함께 조폭 경찰 검찰이 구분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는 검찰 내부의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숱한 의혹이 제기된 각종 비리와 잘못된 관행 등을 모두 까발리는 데 집중하면서도 결국 그게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지점에 종착역을 세운다. 더불어 ‘보복은 복잡한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칙’이라는 주제에 안착하면서 왜 일부 검사가 정치검사가 돼야 하는지 이해하는 듯, 조롱하는 듯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태수의 입을 통해 “(일부 비리 검사 때문에) 99퍼센트의 고생하는 검사들이 욕을 먹는다”며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검사와 ‘떡검’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면서도 다수의 검사들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는다. 태수의 패기 넘치던 초기 임용시절과 한 고참 검사의 과도한 업무에 지친 뒤의 지하철 퇴근길 장면이다.
인트로의 전두환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 취임장면 등의 다큐멘터리를 데칼코마니로 처리한 것은 역사는 돌고 돌며 아직도 잘못된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다는 은유다. 강식 등이 대선 전 점쟁이를 찾아 어느 후보가 당선될지 알아보려는 설정은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실비유다.
강식은 크레덴다(피지배 합리화)의 명수다. 검찰계의 최고스타로서 검찰총장을 넘어선 더 큰 권력을 꿈꾸는 그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 모두스 비벤디(잠정협상) 로그롤링(야합) 메니페스토(공약) 포크배럴(제 밥그릇 챙기기) 등 모든 정치적 권모술수의 절대고수고, 동철은 그의 충견노릇을 하며 스케이프 고트(혹세무민)에 앞장선다.
조인성은 ‘비열한 거리’로 비로소 영화배우가 됐다면 그 후 11년 만에 맡은 유사한 현대 장르물에서 당분간 보여주기 힘든 연기력을 펼친다. 영화는 태수의 내레이션이 전체를 이끄는데 조인성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코미디가 됐을 것이다.
지금껏 이름값에 걸맞은 상업영화를 만나지 못했던 정우성은 이제야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잔뜩 무게를 잡던 그가 튀어나와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부르며 랩까지 소화하는가 하면 클론의 ‘난’에 맞춰 조인성과 함께 군무를 펼치는 장면에서 그가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 절실함이 읽힌다.
김소진은 신 스틸러다. 능청맞은 경상도 사투리로 눙치는 연기는 조인성과 제대로 불꽃이 튄다. 다만 동철과 상희는 그 누가 맡아도 이상 없을 만큼 지극히 1차원적인 캐릭터인 게 아쉽다.
두일과 태수의 스토리는 극중의 극이고, 류준열에게선 ‘친구’의 장동건이 엿보인다. 비록 신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의 존재감과 두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넘버3’도 보인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더킹' 포스터
성동일의 ‘깜짝출연’과 에피소드 등 ‘풋’하는 웃음이 나올 소소한 재미가 적재적소에서 긴장감을 이완시켜준다. 태수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공부할 때 시끄럽게 런던 보이즈의 ‘Harlem desire’가 흘러나오는 메시지도 크다. ‘할렘가의 욕망’에서 할렘은 전라도일 수도, 검찰일 수도, 정치권일 수도 있다.
데칼코마니 분할화면 팬텀촬영기법 등 다양한 테크닉이 동원돼 극의 흐름과 해당 인물들의 감정을 읽는 데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강식은 자신이 역사라 했지만 사실 이 영화가 바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역사교과서이자 수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고 노무현에 대한 헌사다. 판타지와 파티장면에서 어김없이 휘날리는 새의 깃털은 어설프고 천박한 인간의 욕망이다. 결코 조인성과 정우성의 비주얼에 의탁한 얄팍한 상업영화가 아니다. 한국영화에 ‘대부’가 탄생했다. 134분 15세 이상 관람 가. 오는 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