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관명 칼럼] 예로부터 인디밴드의 작명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금 떠오르는 몇몇 이름들. 술탄 오브 디스코, 3호선 버터플라이, 보이즈 인 더 키친, 아이씨사이다, 브로큰 발렌타인, 델리 스파이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브로콜리 너마저, 쏜애플, 이스턴 사이드 킥 등등. 여기에 한 팀을 더 추가하자. 바로 2인조 록밴드 전국비둘기연합(전비연)이다.
전국비둘기연합은 서울 영등포고 1년 선후배 사이이자 교내 밴드부 ‘EXIT’ 멤버였던 김동훈(보컬 기타)과 박영목(보컬 드럼)이 지난 2006년 12월 결성했다. 당시에는 최승원(베이스)까지 3인 체제였다. 최승원은 김동훈이 가입했던 만화카페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에서 활약한 동호인. 닉네임은 김동훈이 ‘영웅모르명심’, 최승원이 ‘망가’였다. 망가가 어느날 영웅모르명심에게 ‘밴드를 만들어보자’고 문자로 제안했고, 영웅모르명심은 당시 버스차창 밖으로 휘날리는 진눈깨비가 비둘기 비듬 같다는 생각이 들어 ‘팀이름은 전국비둘기연합이 어때?’라고 화답했다. 드럼은 ‘당연히’ 박영목으로 낙점됐다. 최승원은 2010년 정규 1집 ‘Empathy’까지만 하고 탈퇴했다.
지난 4일 따끈따끈한 새 앨범 ‘HERO’를 낸 전국비둘기연합을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났다. ‘HERO’는 2011년 김동훈 박영목 2인체제로 발표한 ‘Root’ 이후 6년만에 나온 정규 3집. 록밴드의 거침없는 질주본능이 활어처럼 팔딱팔딱 뛰면서도, 한곡 한곡 정성껏 다듬고 쓸데없는 것들은 싹둑싹둑 잘라낸 11곡이 담겼다. 전체적으로 ’2인조 밴드 맞나’ 싶을 정도로 꽉찬 사운드를 들려준다.
= 우선 최근 CJ문화재단의 튠업 17기 뮤지션으로 선정됐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김동훈) “기성팀들은 경연 없이 프리젠테이션만으로 심사를 받았다. 앞으로 제작할 앨범 컨셉트와 공연 기획을 설명드렸는데, 술탄오브디스코와 함께 선정됐다. 앨범과 공연 제작비 지원을 받게 됐다. 광흥창 CJ아지트 공연장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 어떤 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나.
(박영목) “2가지다. 하나는 윙카를 렌트해서 전국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는 투어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디너쇼 혹은 출장뷔페 형식의 록밴드 공연이다.”
= 이왕 만난 김에 평소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자. 박영목의 드럼은 샤우팅 창법 같다는 평가가 많다.
(박영목) “드럼은 밴드에서 기본 베이스인 리듬을 만들어주는 악기다. 그런데 나만의 색깔을 내고 싶었다. 꼭 샤우팅 창법만 끌어온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음악을 모두 믹스해서, ‘박영목’이라는 인물을 좀더 표현하고 싶었다. 뒤에 있다가 앞으로도 나올 수 있는 그런 드럼이다.”
= 몇몇 전비연 영상을 보니 김동훈이 기타를 치다가 드럼 위로 올라가던데, 그래서 째려본 것인가.(웃음) 드럼은 어떤 것을 사용하나. 기타도 말해달라.
(박영목) “째려본 게 아니라 원래 눈이 그렇게 생겨먹었다.(웃음) 스네어는 마펙스(Mapex)에서 나온 마얀(Mayan) 스네어, 심벌은 다 깨먹었는데 주로 사비안 오존(Sabian O-Zone) 심벌을 쓴다. 라이드는 인치 큰 것을 사용하고.”
(김동훈) “멕시코 펜더의 바리톤 텔레캐스터를 쓴다. 원래 스탠더드 튜닝은 ‘미 라 레 솔 시 미’인데, 이 바리톤 기타는 ‘시 미 라 레 파# 시’로 4도를 낮췄다. 기타와 베이스의 중간음역대 소리를 낸다고 보면 된다.”
= 어쩌다 악기를 접하게 됐나.
(박영목)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회에서 드럼을 처음 접했다.”
(김동훈) “중3 때 ‘개그콘서트’의 ‘우비3남매’ 코너를 보다가 개콘 밴드가 즉석에서 연주한 개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를 듣고 기타 소리에 빠졌다.”
= 예전 인터뷰에서 ‘파인더루트 투어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어떤 투어였나.
(김동훈) “록의 뿌리를 찾자고 해서 ‘Find the Root’였다. 2011년 옆방 연습실에 있던 친한 형이 ‘전비연은 이제 버스킹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왜 안해?’라고 물었다. 그래서 악기들을 다 싸들고 몇군데를 가봤다. 처음 간 곳은 여의도 벚꽃축제였는데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이더라. 시끄러우니까 왔겠지.(웃음) 하여간 기분은 좋았다. 그다음에는 전주국제영화제에 가서 길거리 공연을 했다. 주최측에서 안불렀는데도 그냥 가서 했다. 그러다 내친 김에 제주에서 출발해 서울로 끝나는 전국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평일에는 버스킹을 하고, 주말에는 클럽에서 공연하는 식으로. 결국 전국 25개 도시를 한달 동안 돌아다녔다. 처음 제주도로 떠날 때 우리가 가진 돈은 30만원이 전부였다.”
= 30만원으로 한달 전국 투어가 가능한가.
(김동훈) “그게 가능하더라. 현장에서 우리 앨범을 팔고, 클럽 공연 수익도 조금 생기고. 목포 공연 때는 은퇴후 여행을 오신 부부가 ‘오랜만에 열정을 느꼈다’며 고기도 사주고 숙소도 잡아주셨다. 구미에서는 삼성맨들이 돈도 넣어주고. 어떤 클럽 사장님들은 ‘너희 같은 애들이 없다’며 공연수익 전부를 주시기도 했다.”
= 새 앨범 얘기를 해보자. 일단 재킷 디자인이 멋지다. 배트맨을 닮은 피죤맨(pigeon man. 비둘기 인간) 컨셉트라니 매우 흥미롭다. DC나 마블, 이런 슈퍼히어로물을 좋아하나.
(김동훈) “마블 영화를 보고 위키백과에서 캐릭터 관계를 찾아본 수준이다. 일본만화는 많이 봤다.”
= 그 정도면 아직 입문단계다.(웃음) 피죤맨이 기와지붕에 서있고,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분명히 한국이 배경이다. 앨범 속지에는 불타는 국회의사당까지 있다. 이번 앨범 컨셉트를 잡은 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였나.
(김동훈) “아니다. 훨씬 전이었다. ‘최순실 사태’ 후에 앨범 컨셉트를 잡았다면 국회의사당 대신에 다른 곳이 들어갔을 것이다.(웃음) 앨범에서 말하는 ‘영웅’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광화문에 모였던 그 모든 사람들이다.”
= 앨범 재킷에 ‘001. Rising’이라고 조그맣게 씌어있다. ‘영웅의 탄생’ 편이라는 건데 이런 슈퍼히어로 컨셉트가 앨범마다 계속 이어지는 건가.
(박영목) “스토리를 정해놓고 앨범을 제작한다기보다는 앨범을 만들 당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때그때 들려주는 게 목표다.”
(김동훈) “이미 ‘피죤맨’이라는 뼈대가 있으니까 살 붙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이번 앨범에 김동훈은 ‘기도후’(KIDOHU), 박영목은 ‘목’(MOK)으로 표기돼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동훈) “김동훈, 이러면 외국인들이 잘 못알아듣더라. 전비연에서 활동하는 나와, 일상 생활에서의 나를 구분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박영목) “나도 외국인들이 부르기 편하게끔 ‘목’으로 지었다. 내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니 ‘나무 목(木)’이 많아 ‘목’으로 지은 이유도 있다.”
= 노래를 같이 3곡만 들어보자. 코멘터리를 자유롭게 해달라.(전비연은 ‘Stargazer’(3번), ‘H.O.T(Hero On TV. 4번), ‘Like A LIght’(7번) 3곡을 골랐다)
(김동훈) “‘Stargazer’(스타게이저)라는 곡이다. 군에 있을 때 쓴 곡인데, 당시는 일과가 끝나면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보는 게 낙이었다. 그중에서도 설리에게 가장 ‘꽂혔다’. 그래서 ‘스타를 바라본다’는 뜻에서 ‘스타게이저’다. 자칭 ‘아이유와 친구’라는 군대 후임이 있었는데 아이유와 설리가 친하니까 편지를 써주면 자기 휴가 나갈 때 전해주겠다고 했다. 전해졌을지 모르겠다.(웃음)”
= 전해졌다 한들...(웃음) 지금 나오는 악기는 베이스 아닌가.
(김동훈) “내가 쳤다. 아까 말한 바리톤 기타에서 저음 옥타브를 낮추는 이펙터로 베이스 효과를 낸 것이다.”
(박영목) “드럼은 완전히 깔아주는 느낌으로 쳤다. 다프트펑크 앨범에서 영감을 얻었다. ‘박영목을 보여줘야지’ 이것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다만 곡 막바지에는 내가 조금 튀어나오는게 좋을 것 같아 내가 가진 것들을 풀어놓았다.”
(김동훈) “다프트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을 너무 좋아한다.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프트펑크를 집어넣고 전비연에서 돌렸더니 이 곡이 나왔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다.”
= 다음 곡은 ‘H.O.T’다. 설마 그 H.O.T는 아니겠지?
(박영목) “설마 그 H.O.T다.(웃음) 어렸을 때 우리 두 사람 모두 H.O.T를 진짜 좋아했다.(박영목은 1989년생, 김동훈은 1988년생이다)”
(김동훈) “TV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웅이 H.O.T였다. H.O.T의 스타일도 좋았고, ‘전사의 후예’ ‘캔디’ 이런 가사들도 마음에 들었다.”
= 도입부에서는 웬지 마이클 잭슨이 떠오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꽉 찼다. 2인조 밴드의 사운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박영목) “예전 3인조 사운드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전비연만의 색깔을 찾아보려 제대 후에 고민을 많이 했다. 2인조에 맞게 가진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니 오히려 밀도 있게 곡이 나왔다. (아폴로18의) 최현석 형이 프로듀싱한 영향도 컸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Beat It’에서 모티프를 따온 게 맞다.”
= 최현석 얘기도 좀 해보자. 아폴로18의 기타리스트 최현석은 현재 전비연의 소속사 대표이기도 하다.
(김동훈) “현석이 형과는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쟤네 미친 놈들이다’ 그러면서 친하게 대하셨다.”
(박영목) “정규 1집 때 함께 투어도 다녔다. 최승원이 나간후 사실상 팀이 와해됐었는데 ‘그냥 2인조로 활동해라’라고 조언해준 사람도 현석이 형이다. 형 말대로 두 명이 연습실에서 일주일만에 만든 앨범이 정규 2집 ‘Root’였다.”
(김동훈) “군 제대하고 새 앨범(정규 3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현석이 형이 마침 ‘너네 앨범 프로듀싱해줄게’ 하셔서 자연스럽게 현석이 형네 회사(The CHS)로 들어갔다. 계약서도 없다. 레이블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크루 같은 개념이다.”
= 마지막으로 들을 곡은 ‘Like A Light’다. 완전 신나는 곡이다.
(김동훈) “새 이펙터를 사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는데, 코드만 잡아줘도 화음을 내줘 스케일이 커지더라. 사운드가 웅장해지는 거다. 마치 올림픽 공식주제가처럼. 그래서 그 소스를 가지고 올림픽 주제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나온 노래다.”
(박영목)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노래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웃음) 뮤즈의 드러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히 정규 4집 스타일에 많이 영향을 받았다.”
(김동훈) “기승전결이 있고 매우 드라마틱한 곡이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지다가 힘들게 훈련하던 과거를 회상한 끝에 결국 역전에 성공하는 그런 느낌이다.”
(박영목)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서 앞으로 싱글로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끝으로 올해 계획을 들려달라.
(박영목) “아까 처음 말한대로 CJ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았으니 올해 안으로 새 앨범이 나와야 한다. 정규 4집은 좀더 즉흥적인 느낌으로 갈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형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다.”
(김동훈) “밴드의 음악은 멤버들간의 오해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 이런 오해가 3집에도 사실 있었는데, 4집은 서로 좀더 내려놓고 해서 서로 오해가 없는 작업을 하고 싶다. 앨범 작업과 함께 ‘피죤맨’ 컨셉트도 좀더 구체화할 계획이다. 2가지 공연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올 여름까지 보낼 것 같다.”
(박영목) “꿈을 잃어버린, 날개가 꺾인 요즘 비둘기들이 다시 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 같다.”
= 전비연도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을 마음껏 날기를 바란다. 수고하셨다.
(전비연) “수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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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