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 배우 현빈이 맡은 역할들은 이랬다. 프렌치 레스토랑 사장, 백만장자, 백화점 사장, 테마파크 상무⋯. 잘생긴 외모,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는 재벌로 표상되는 역할을 주로 도맡았다. 성격도 비슷했다. 거만하고 까다로운 남자들.
대중에 가장 깊이 각인된 그의 모습은 아마 잘 차려입고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 부잣집 남자일 것이다. 고집불통에다 안하무인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관심이 많고 로맨틱한 말들을 쏟아내는 ‘심쿵남’이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도 그런 캐릭터 때문일 게다.
물론 권투선수, PD 역할을 맡았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한 작품만 기억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역시 자신이 재벌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역을 맡아야할지, 아니면 본인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나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터이다. 전역 후 첫 작품인 영화 ‘역린’과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의 이미지는 반전되지 않고 ‘시크릿 가든’ 속 김주원에 정체돼 있었다.
그랬던 그가 변신을 감행했다. 만일 현빈이 아니었다면 ‘공조’(감독 김성훈)는 어땠을까. 데뷔 후 처음으로 격투, 총격, 카 체이싱 등 고난이도 연기에 몸을 내던지며 수준급 액션을 보여줬다.
일명 ‘재벌’ ‘실장님’ 이미지로 표상되던 그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장르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군 전역 후 부침을 깨고 이제는 ‘액션 연기의 슈퍼 루키’라는 말로 기억되고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공조’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액션을 직접 수행했다고 한다. 노력과 집념으로 이룬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봐야겠다.
‘공조’에서 특수 정예부대 출신의 북한형사 림철령 역을 맡은 그가 신분에 변화를 주었을지언정 여전히 ‘멋짐’을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만날 작품에서 한껏 망가진 현빈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purplish@osen.co.kr
[사진] '공조' '시크릿 가든' 스틸 이미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