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세계에서 연봉은 선수의 얼굴이다. 지난해 성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도 하다. 연봉협상에서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는 그만큼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4일 한화를 끝으로 2017년 시즌을 앞둔 10개 구단 재계약 대상자들의 연봉 협상이 모두 마무리됐다. 올해는 비활동기간(12~1월) 준수로 팀들의 해외 전지훈련이 늦어졌고, 덩달아 연봉협상완료도 예년에 비하면 보름에서 20일 정도 늦어졌다. 여기에 각 구단들의 일괄발표 방침이 굳어짐에 따라 마지막까지 팬들을 궁금케 하는 사안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올해 최고의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들은 누구였을까. 아무래도 인상률 측면에서는 기존 연봉이 많지 않은 신진급 선수들이 유리했다. 대부분이 개인 역대 최고 연봉을 찍으며 협상 테이블서 웃었고 억대 연봉에 진입한 선수도 9명이나 됐다. 네 배 이상 뛰었음을 의미하는 300% 이상 인상도 두 명이었다. 각 구단들의 발표를 토대로 따뜻한 겨울을 보낸 상위 10명의 얼굴을 만나보자. (WAR 기록제공 스포츠투아이)
10. 김지용(LG), 4000만원→1억원, 150% 인상, 2016년 WAR 0.68
LG 불펜의 세대교체를 이룬 주역 중 하나. 2010년 데뷔 후 2015년까지 1군 무대에서 던진 이닝(40⅔이닝) 이상을 지난해 한 해에 소화했다(63이닝). 두둑한 배짱과 묵직한 구위로 서서히 신분을 상승시키더니 결국 필승조에 자리를 잡아 51경기에서 3승4패17홀드 평균자책점 3.57로 선전했다. 2015년 리그 최저연봉인 2700만 원을 받았던 김지용은 첫 억대 연봉의 감격도 누렸다.
9. 정의윤(SK), 1억2000만원→3억원, 150% 인상, 2016년 WAR 3.17
SK의 4번 타자로 맹활약을 펼쳤다. 144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1리, 27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타선에서 분투했다. 후반기 부진이 다소 아쉽지만 이제 정의윤이 없는 SK 타선은 상상하기 어렵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구단도 그 공은 인정해 150% 인상으로 3억 원을 맞췄다. 올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한다는 점도 고려된 수치다. 2억 원대를 건너 뛰어 곧바로 3억 원대에 올라섰다.
8. 서동욱(KIA), 5800만원→1억5000만원, 158.6% 인상, 2016년 WAR 3.56
방출의 위협까지 시달렸던 선수가 KIA 입단 후 팀의 보배가 됐다.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선수로 지난해 124경기에서 타율 2할9푼2리, 16홈런, 67타점으로 맹활약했다. 2루는 물론 다른 포지션도 소화하는 등 팀 공헌도도 높았다. 연봉 협상에서도 대박을 쳤다. 2014년 9000만 원, 2015년 7500만 원, 2016년 5800만 원으로 하락세를 그리던 연봉은 단숨에 1억5000만 원까지 올랐다. 2003년 데뷔 후 14년 만의 억대 연봉이었다.
7. 박건우(두산), 7000만원→1억9500만원, 178.6% 인상, 2016년 WAR 5.80
연차라는 ‘계급장’을 떼고 순수하게 기록만 놓고 연봉을 산정했다면 이 정도의 인상률로는 부족했을 선수. 지난해 132경기에서 타율 3할3푼5리, 20홈런, 83타점의 대활약을 펼치며 미국으로 떠난 김현수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유망주 꼬리표도 완전히 뗀 뒤 당당하게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다. 이런 박건우은 연봉 협상에서도 웃었다. 2016년 100% 인상에 이어, 올해는 178.6%가 인상돼 2억 원에 500만 원 모자란 금액에 도장을 찍었다. 2년 연속 100% 인상의 사례를 찾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6. 하주석(한화), 3200만원→9000만원, 181.3% 인상, 2016년 WAR 0.63
2012년 입단 당시 고교 최고 내야수로 손꼽혔지만 2016년 연봉은 3200만 원이었다. 하주석이 걸어온 프로 경력 초반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치. 그러나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비가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115경기에서 타율 2할7푼9리, 10홈런, 57타점을 기록하며 ‘차세대 유격수’의 본격 발진을 알렸다. 감을 잡은 만큼 더 좋은 활약도 기대할 수 있다. 억대 연봉 도전에도 나선다.
5. 양성우(한화), 2800만원→8000만원, 185.7% 인상, 2016년 WAR 0.81
2015년까지 1군 출장이라고는 46경기에 불과했던 양성우가 지난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다. 한화 외야의 부상 공백을 틈타 5월 들어 기회를 잡은 양성우는 108경기에서 타율 2할7푼1리, 4홈런, 53타점을 수확하며 독수리 외야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근성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덤. 사실상 리그 최저연봉 수준이었던 연봉도 8000만 원으로 대폭 올랐다. 한화 선수 중에서는 최고 인상률.
4. 채은성(LG), 5500만원→1억6000만원, 190.9% 인상, 2016년 WAR 2.32
LG의 이른바 ‘신연봉제’ 시스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 중 하나. 얼마가 오를까가 관심이었는데 적지 않은 인상폭과 함께 단숨에 억대 연봉자가 됐다. 2군에서의 뛰어난 활약과는 별개로 1군까지 치고 올라오는 데 다소간 시간이 걸린 채은성은 지난해 128경기에서 타율 3할1푼3리, 9홈런, 81타점을 수확하며 LG 타선 리빌딩의 기둥으로 각광받았다. 1억500만 원 인상은 류제국(1억7000만 원) 인상에 이어 팀 내 두 번째 인상폭. 연봉 협상 테이블이 비교적 후했던 LG에서도 돋보이는 선수였다.
3. 이천웅(LG), 2800만원→9300만원, 232.1% 인상, 2016년 WAR 0.94
리그 최저 연봉 수준의 선수였지만 지난해 활약으로 일약 억대 연봉을 바라보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103경기에서 타율 2할9푼3리, 6홈런, 41타점, 출루율 3할7푼6리로 활약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랄 만한 인상률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컸다는 것, 결정적인 상황에서 높은 가치의 활약을 펼쳤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2. 김재환(두산), 5000만원→2억원, 300% 인상, 2016년 WAR 6.70
엄청난 힘을 선보이며 두산 국내 타자의 장타 역사를 상당 부분 바꿨다. 그 결과는 자신의 연봉 앞자리가 바뀌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34경기에서 타율 3할2푼5리, 37홈런, 124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최고 시즌을 보낸 김재환은 한국시리즈 우승 프리미엄까지 안고 300%가 오른 2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완벽한 스타가 되기 전 거치는 1억 원대를 그냥 건너뛴 셈. 순수하게 지난해 숫자만 놓고 보면 납득이 될 만한,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인상이었다. 두산의 역대 최고 인상률 기록(2014년 유희관·284.6%)도 깨뜨렸다.
1. 신재영(넥센), 2700만원→1억1000만원, 307.4% 인상, 2016년 WAR 5.05
박병호 서건창을 잇는 넥센 연봉 대박의 주인공. 지난해 전까지 1군 등판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신재영은 30경기에서 168⅔이닝을 던지며 15승7패 평균자책점 3.90의 맹활약을 선보이며 KBO 공식은 물론 각종 매체의 신인상을 독식했다. 상금으로 가져간 돈도 꽤 된다는 후문. 잘하는 선수에게 화끈한 수표를 내밀었던 넥센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고, 신재영은 결국 올해 리그 최고 인상률의 영예를 안았다.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높은 인상률이기도 했으며, KBO 역대로 따져도 6번째에 해당되는 기록이었다. /skullboy@osen.co.kr